[뉴스토마토 조윤경기자] 일본 자민당이 14일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게 됐다.
아베노믹스의 추진력이 강화되면 엔저 기조가 가팔라져 수출 기업들에게 호재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이 함께 나타나고 있어 아베 총리가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히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자민당, 과반의석 확보..연립여당 3분의 2 의석 차지
NHK 개표 집계 결과,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전체 의석 475석 가운데 295석을 확보했다. 단독 과반인 238석은 물론 중의원 내 모든 상임위에서 위원장·위원의 과반을 확보할 수 있는 '절대안정 다수(266석)'도 웃도는 수준이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석은 모두 325석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훌쩍 뛰어넘었다. 3분의 2 의석은 개헌 발의가 가능한 의석수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이전보다 11석 늘어난 73석을 확보했지만, 자민·공명당 독주체제를 막는데는 실패했다. 특히, 당초 목표했던 100석 달성도 이루지 못해 가이에다 반리 민주당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공산당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18년 만에 처음으로 소선거구에서 당선자를 낸 공산당은 종전 의석(8석)의 두 배 이상인 21석을 차지했다. 14년 만에 두 자릿수 의석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극우 성향인 차세대당은 진보 성향의 사민당, 생활당과 같은 2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종전의 19석에서 크게 축소된 것이다.
이제 다음주로 예정된 특별 국회에서 내각 총사퇴와 제3차 아베 정권 출범 절차가 진행되게 된다.
아베 총리는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2년 간의 아베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얻게됐다"며 "겸허하게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자민당 본부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아베 정책 추진력 강화..엔저 더 빨라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민당의 이번 압승이 아베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등에 업은 '진정한 승리'는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야당이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불가피하게 자민당을 뽑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도통신이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1.8%가 아베노믹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아베노믹스를 좋게 평가하는 응답자는 37.1%에 불과했다. 이런 까닭에 이번 선거의 투표율도 매우 저조한 수준인 52%에 머물렀다.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던 지난 2012년의 59.3%보다도 7%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면서 자신의 기존 정책 노선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적으로는 우경화 행보 등에 박차를 가하고 경제적으로 그간 추진해왔던 아베노믹스에 가속 페달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민당은 선거 유세 기간에도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며 아베노믹스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아베 총리가 집권한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무려 40% 가량 하락했다. 또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30엔까지 더 추락해 수출 기업들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다.
로스 J 벌랜드 FX스트리트 애널리스트는 "아베 총리의 집권이 4년 더 연장됐다"며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엔저 기조는 속도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월가에서는 엔저 지속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아베 총리가 지난 2년간 엔저를 이끌었던 경제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엔화 약세에 대한 기대감으로 엔화를 팔고, 주식을 사는 이른바 '아베 트레이드'가 더 큰 힘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에노 츠요시 NLI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아베 내각은 단기적으로 주식 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왔다"며 "선거 압승은 주가 상승 및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순풍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베노믹스 성공할까..해결 과제 '산적'
하지만 향후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일본 경제가 엔저 영향에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이라는 역풍에 직면한데다 아베노믹스의 세번째 화살인 '구조 개혁'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만성 재정적자를 우려해 1차 소비세 인상(5→8%)이라는 카드를 지난 4월 꺼내들었지만, 이후 일본 경제는 리세션(경기 후퇴)에 진입하는 수모를 겪게 됐다. 이에 2차 소비세 인상(8→10%) 연기 결정이 나왔지만, 이는 또 국제 신인도 추락이라는 악재로 변모했다.
실제로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부채 감축 목표 달성이 불확실해졌다는 이유로 일본 국가 신용 등급을 Aa3에서 A1으로 한 단계 강등했다. 지난 2011년 8월 이후 처음으로 일본 신용등급을 낮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가늠할 최대 변수로 세번째 화살의 일환인 '실질임금 회복' 여부가 꼽히고 있다. 정부의 계속되는 돈 풀기에도 일본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은 16개월 연속 뒷걸음질쳐 물가 인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엔저 효과가 대기업에서 가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낳는다.
교도통신은 "저조한 임금 상승률은 일본 경제에 심각한 하강 위협"이라며 "아베 총리가 2차 소비세 인상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실질 임금 상승이 선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한 "내년 봄 일본 노조들이 기본금 인상을 추진키로 했다"며 "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다치 마사미치 JP모건체이스 이코노미스트는 "아베 총리가 국민들의 실질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그는 이제 아베노믹스에 따른 혜택들이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