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하나기자] 호재보다는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국내 증시가 대외 리스크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유가 하락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 금융불안이 지속되면서 위축된 외국인의 투심에 코스피 지수는 1900선 아래로 밀려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8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2.66포인트(0.14%) 내린 1897.50에 마감했다. 장중 1881.73까지 내려가며 연저점을 경신했다.
◇올해 코스피 지수 추이. (자료=대신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
무엇보다 외국인의 매도세가 계속되며 지수 하락을 이끌고 있는 모습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이날도 5000억원 넘게 순매도하며 7거래일 연속 팔자세를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시장 방향성을 주도하는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악화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러시아 리스크를 꼽고 있다. 러시아 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이 되고 있고, 위험자산 선호를 제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는 최근 국제 유가 하락에 따라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자 기준금리를 단번에 6.5%포인트 대폭 인상했다. 이에 국제 유가 하락세 완화와 러시아 중앙은행의 추가 자본 공급 계획에 따라 루블화가 8거래일 만에 반등하는 등 급락세는 진정됐지만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김진영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의 힘겨루기에서 촉발된 유가하락이 러시아의 디폴트 리스크로 전이되면서 연말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심화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WTI와 글로벌 증시, 러시아 루블화 추이. (자료=Bloomberg, 우리투자증권 투자정보부)
임동락 한양증권 연구원은 "유가 급락으로 러시아 재정수지와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있다"며 "단기외채 규모가 늘어나고 있고 외국인 자금 유출도 확대되고 있어 당분간 러시아 리스크가 높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임 연구원은 "러시아 외환보유고를 감안할 때 단기간 내 디폴트 상황에 빠질 가능성은 낮지만, 유가하락이 고착화되고 금융불안이 계속될 경우 루블화 방어를 위한 외환보유고 감소 확대와 외채 상환 압력이 커질 것"이라며 "유럽과 러시아간 상호 경제 의존도를 감안할 때 러시아 리스크 심화는 유럽 실물경기에도 악영항을 줄 것이며 이는 위험자산 선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김유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 금융불안이 증폭되며 채무 지급 유예(모라토리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며 "과거 1998년 러시아 위기와 비교하면 그 당시보다 펀더멘털은 양호하지만 서방의 경제제재나 유가 하락 등 대외 여건이 부정적이라 러시아 사태가 추가로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비해 외환 보유고나 단기 외채 상황이 우호적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대응능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루블화 가치 하락 러시아의 외환보유고 감소 추이.
(자료=Bloomberg, 한화투자증권)
러시아의 경제나 금융불안이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연결되며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액이 늘어나면 단기 외채 규모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흐름은 이미 러시아 외환보유고 규모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해 말 5096억달러에서 올해 11월 기준 약 4200억 달러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러시아 외환보유고 분기 평균 감소율은 지난해 1.3%에서 올해 4.8%로 확대됐다.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철회한다면 상황이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서방의 경제 제재가 해소되면서 러시아 경제도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정치적 부분을 예단하기 어렵기에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러시아 사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러시아 사태가 국내 실물 경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상황이 악화될 경우 우리 금융 시장도 부정적 여파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러시아 익스포저의 국가별 비중. 러시아 채무 불이행
우려는 유럽 금융기관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자료= BIS, 한화투자증권)
김유미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러시아와 관련된 수출이나 금융 비중이 미미해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하지만 간접적으로 러시아 교역 비중이 큰 유럽의 수요 약화와 신흥국 금융시장의 투자심리 위축에 따른 자금 유출 등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국내 금융시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단기적으로는 러시아 사태에 따른 노이즈가 지속되지만 러시아의 파국 가능성이 제한적이기에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유동성 환경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이어지지만 러시아의 입장변화가 단기간에 수반되지 않는 현 상황의 경우 일부 원자재 수출국은 펀더멘탈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고, 단기적으로는 그 파장이 신흥시장 전반에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단 중장기 관점에서 본다면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고 공산풍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과 중국, 인도 등은 신흥시장 내에서 차별화 대열의 선봉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러시아의 역주행이 가속화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국내증시가 1900선을 바닥으로 2000선 사이의 박스권 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며 "러시아 등의 정치적 잡음이 매도 타이밍을 지시한다면 주요국 정책과 경기측면의 온기는 강력한 매수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