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고작 43쪽을 읽고 덮어버린 책이 있습니다. 재미가 없어서였습니다. 그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나, 가치를 지닌 책과 그 뒷이야기를 소개하는 '뒷북'이 새해 처음으로 다루는 책은 이현택 중앙일보 기자의 <천천히, 함께하는 마지막>(책밭)입니다. 지난해 10월10일 출간됐습니다.
이 책은 재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결말에 대한 짐작이 가능하며, 게다가 기자가 쓴 책입니다. 그것도 타매체 기자의 작품이지요. 그런데 왜 소개하려는 걸까요?
책은 이 기자가 지난 2007년 상피내암, 지난 2011년 식도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최근까지 일상을 쓴 것입니다. 예상하셨나요? 슬픈 감정을 '슬프다'고만 표현할 줄 아는 제 능력의 한계를 털어놓지요. 맞습니다. 책 내용이 슬퍼서 책을 덮었다 펴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흐름이 깨지면서 자연스레 재미도 떨어졌고요. 문득 이 책의 원본인 연재 기사 '불효일기' 또한 슬프다는 이유로 연재를 한달 반 가량 중단한 적이 있었다는 게 떠오르는군요.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사)에서 글쓰기의 이유 중 하나로 정치적 목적을 꼽았죠. 글쓰기를 통해 남의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죠.
전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를 '암 환자와 그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해두고 싶습니다. 또한 제 가족 중 암 환자가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이 와 닿는 걸 거부할 수 없었다는 점도 고백합니다. 그리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내가 살아야 가족을 보살필 수 있다는 핑계로 아픈 가족에게 소홀했던 날을 반성하면서요. 이런 건 암 환자의 가족에게만 해당하는 일도 아니지요.
◇"암 환자는 심심하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가 최근 공개한 '2012년 국가암등록 통계'를 보면 지난 2012년 새로 발견된 암 환자 수는 22만4177명입니다. 지난 2002년 11만7089명보다 91.4%나 늘었습니다. 또한, 최초 암 진단 이후 환자 3명 중 2명이 5년 이상 생존할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암 환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아울러 갑자기 죽는 무서운 병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인지 암을 소재로 하는 책도 많습니다.
"암 관련한 책은 많이 나와 있으나, 병에 대한 얘기 뿐이지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었습니다. 치료는 의료진이 할 수 있지요. 책은 치료 받는 암 환자의 리얼한 일상을 다뤘습니다. 암 환자는 심심합니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일하느라 바쁘죠. 이렇게 비자발적 불효자가 되는 현대인에 대한 문제의식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들은 작가의 말이 마음을 울립니다. 아닌게 아니라, 암 진단을 받은 환자라고 해서 그저 누워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생업을 할 수도 없습니다. 운전하기도 어렵죠.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아깝습니다.
"아버지, 심심하지 않아요?"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온라인 연재 기사가 책으로 나온 겁니다. 아버지는 처음에 기사와 책의 주인공이 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으나, 나중에는 "이 문장 바꿔라"며 '데스크'로 불리는 상사 역할도 했다는 후문입니다.
실제로 책은 환자의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체가 발랄해서 술술 읽히다가도 무슨 약과 치료를 받았고 병원비는 얼마였는지, 어떤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눴는지 등 암 환자에 관심이 없는 독자가 읽으면 지루할 만큼 평범한 일상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떻게 이토록 세세한 사정들이 기록됐을까요? 아들은 바쁜 걸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기자입니다. 이 기자는 일터 근처 병원에 아버지를 입원시키고, 점심시간을 활용해 병원에 자주 들러 밥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런 아들이 발품을 팔아 마련한 음식을 먹은 아버지는 "먹어보니 너의 효심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글과 사진, 동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아버지는 기사를 읽으며 인생을 돌아보고, 아들은 아버지의 일상을 함께 하며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내고 인세가 나오면 아버지와 아들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서.
하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아버지의 일상은 끝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지루하더라도 차라리 내용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책이라서 종이를 넘기는 손이 무겁습니다.
언젠가 기자인 이 아들은 '죽음'을 화두로 아버지를 인터뷰했습니다.
아버지는 답했습니다.
"추접스러워 죽고 싶은데, 죽으면 니 엄마가 더 슬퍼할 것이야. 어차피 죽을 것이면 추접스러워도 6개월 더 살려고…."
아버지는 국밥 두 그릇과 아들 앞에서 울었습니다.
"아프고 서럽다."
그런 아버지는 지난해 3월 아들의 결혼식에서 정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운동을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습니다. 밥도 꼬박꼬박 먹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는 2시간 동안 웃으며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검은 넥타이를 매야 하는 불효는 책 발간보다 3개월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언제 찾아올 지 모를 죽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 당신이 없을 때 찾아올 친구들을 소개해줬습니다. 지난해 여름 아들은 슬펐습니다.
◇이 책의 가치는?
책의 모태인 이 기자의 기사 '불효일기'는 온라인 저널리즘의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기자가 자신 개인사를 기사화함으로써 독자와 소통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하고 감동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와 관련해 항의 메일을 받는 일도 흔치 않았던 이 기자는 이번 기사로 많은 독자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사는 31화까지 연재됐습니다. 그만큼 아버지를 자주 만났습니다. 팩트가 부실한 기사를 쓸 수 없었지요. 저자는 30대 남성이 아버지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부럽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네요.
물론 이 책이 생존에 급급한 까닭에 가정을 꾸리는 게 힘들고, 있는 가정마저 멀리하는 문제, '일·가정 양립'이라는 시대의 과제를 지목한다거나 정책적 비판까지 나아가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일상을 담담하게 담았기 때문에 메시지가 독자에게 더 와 닿는 게 아니었을까요.
최근 지극히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상과 사랑 이야기를 담아 짙은 여운을 주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세간에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죽음을 다루기 때문일까요? 이 책도 유사한 류의 울림을 줍니다. 올해 출판 트렌드로 꼽히는 키워드 '감동'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건너는 강을 너무 빨리 건너버린 사연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지만, '불효일기'를 쓰면서 아버지의 일상과 함께하려 노력한 저자는 효자의 한 모습을 보여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작가의 말로 이번 '뒷북'의 맺음을 대신할까 합니다.
"다 사드렸는데 보리굴비를 못 사드렸어요. 지금도 사실 많이 보고 싶어요. 더 살지. 그 점이 지금도 섭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