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충희기자] 국제원유 가격이 폭락을 거듭하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지난해 국내 원유 재고 평가손실액이 1조원을 넘어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정유사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실적은 극도로 불안한 모습이다.
세계 3대 원유가격은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닥친 국제유가 폭락 사태 이후 6년여 만에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13일(현지시간) 거래를 마친 두바이유 가격은 하루 만에 2.37달러 급락한 43.30달러,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0.18달러 내린 45.89달러,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은 0.84달러 내린 46.59달러를 기록했다.
앞서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올해 국제유가 평균 예상치를 접한 시장의 우려도 더욱 커졌다. 골드만삭스는 브렌트유 가격의 올해 연간 평균치를 배럴당 83.75달러에서 50.40달러로, WTI 연간 평균치를 배럴당 70달러에서 41달러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끝 모를 추락이다.
◇WTI, 두바이유 가격 추이.(자료=SK증권)
◇정유 3사 지난해 모두 적자전환할 듯
지난해 국제유가 폭락의 직격탄을 맞은 국내 정유업계의 영업손실은 사상 최대치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4분기 들어 유가가 더욱 빠르게 하락세를 타면서 재고평가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정제마진이 지난해 2분기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서 정유사업 부문의 적자도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 구매시점부터 수입, 정제, 유통, 판매까지 걸리는 기간이 보통 40~50일 소요되는 업계 특성상 유가 하락폭이 클수록 가만히 앉아서 입는 평가 손실액도 커진다.
악화된 4분기 실적 탓에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상위 3사의 2014년 연간 실적도 적자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SK증권은 SK이노베이션의 연간 영업손실이 470억원, GS칼텍스 4334억원, S-Oil 3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977년 이후 37년만에, S-Oil은 1980년 이후 34년만에 영업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올해 재고 평가손실 자유로워..적자 발생 가능성 낮다"
저유가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국내 정유업계의 올해 실적은 모두 흑자전환할 것으로 예상됐다. SK이노베이션이 매출액 41조9884억원·영업이익 9000억원, GS칼텍스가 매출액 26조1948억원·영업이익 6167억원, S-OIL이 매출액 18조890억원·영업이익 4174억원을 각각 기록할 것으로 SK증권은 추정했다.
낮은 유가 흐름에도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이 상향 조정되는 것은 지난해와 같은 단기간 내 대규모 유가 폭락 사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유가는 추가하락 폭이 지난해보다 제한적일 것이기 때문에 재고 평가손실에서 자유로운 만큼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등에서 급격히 늘고 있는 대규모 원유 정제시설로 인해 글로벌 공급과잉 문제가 심화되면서, 장기적인 수익성 악화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의 정유제품 수출입통계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정유제품을 연간 기준 70만톤 순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1106만톤 순수입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는데, 이 같은 흐름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여 국내 업계의 수출량도 그만큼 줄어들 전망이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지난해 10월 84만톤, 11월 7만톤 정유 제품 순수출을 기록하다가 12월에는 38만톤 순수입을 기록했다"면서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중국은 여전히 정유 제품 순수입 상태지만, 순수입 물량은 2013년 대비 9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자원의 블랙홀이던 중국이 성장 둔화와 자체 생산을 기반으로 수입량을 크게 줄이면서 세계경제는 또 한 번 출렁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다 셰일가스 여파에 산유국들이 공급량 조절보다는 정면승부를 택하면서 자원의 공급과잉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올해 정유업계의 최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