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을(乙) '신고선수'들, 그들은 왜 외로운 싸움에 나섰나

KT 위즈 "선수들과 대화로 원만한 해결 할 것"

입력 : 2015-01-19 오후 5:38:33
◇KT위즈 홈구장으로 사용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사진=이준혁 기자)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관련 제도 미흡에 관리·중재 기관 부재, 도울 수 있는 힘을 보유한 집단의 외면, 동료 의식의 결여, 아직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 프로스포츠산업의 현실, 딱히 명확하지 않은 선수 지위, 이러한 상황에서 계약 내용을 이행하려하지 않는 대기업과 잘못된 계약 관행들…. 
 
본지가 지난 18일 저녁 단독 보도한 <KT WIZ 신고선수 무단 방출..'갑질' 파문> 기사는 아직 산업적 기반이 미흡한 국내 프로야구계에서 제도의 보호는 물론 동료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약자인 이른바 '신고선수'(현 육성선수)가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고용자의 횡포를 당하면 어떤 형태의 처절한 상황까지 몰락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퓨처스(2군)리그에서 활약한 프로야구 KT위즈는 2013년 9~11월 구단의 재량으로 신고선수를 연이어 선발했다.
 
KT는 계약 시점을 실제 입단 시기가 아닌 이듬해인 2014년 2월1일로 지정했고 선수 급여도 2월부터 줬다. 또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과 다르게 선수의 귀책사유 없이 2014년 3~6월(3월 3명, 4월 1명, 6월 2명)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도 계약과 달리 잔여 급여를 한푼도 지급하지 않고 버텨왔다. 
 
KT에 선발 된 후 비활동기간(12월~1월)을 포함해 2월전까지 구단의 지시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의 급여를 지급하라는 것이 계약 해지 된 신고선수들의 주장이다. 
 
이에 KT 위즈 관계자는 "계약 해지는 구단이 요구하는 야구 수준과  윤리 수준에 일부 선수들이 미치지 않아 이뤄졌을 뿐이며 12월~1월 급여 미지급은 모든 프로야구선수들에게 적용되는 규율"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KT의 횡포는 KT에게 계약 해지를 당한 6명이 법적 싸움을 결정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 전 선수 6명은 더는 프로야구 선수로서 일할 의욕은 잃었지만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는 것은 물론 청소년기부터 함께 해온 야구계 동료의 권익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외로운 싸움에 나섰다. 
 
◇KT위즈가 지난 2013년 11월14일 서울 세종로 KT 광화문 사옥에서 BI(Brand Identity) 디자인이 적용된 유니폼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News1
 
◇계약 시점부터 잘못..'13년9월부터 일하고 '14년 2월 계약
 
현재 국내 프로야구 선수에 대한 지위는 명확하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이긴 하나 근로자 성격을 어디까지 인정하냐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근로 형태를 보면 사업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형태의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다만 이는 법적·제도적으로 명시화된 규정도 없고 판례도 없다. 이같은 프로야구 선수의 불명확한 지위는 KT와 법적 다툼을 진행하려는 6명의 법적대리인 장달영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도 익히 파악하고 인정하는 실제 현실이다.
 
하지만 이들 원고 6명의 법적 지위 문제는 사안의 핵심이 아니다. 근로건 용역이건 KT위즈란 회사에 속해 업무를 진행했음에도 행위에 따른 정당 댓가를 받지 못함은 물론, 심지어 계약의 해지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당하고 계약에 따라 받아야할 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단 것이 이번 분쟁의 핵심 쟁점이다.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6명의 실제 근무 시점은 2013년 9월부터 11월로, 선수 계약을 체결했던 시점과 계약서에 기재된 시점 대비 최소 3개월에서 최대 5개월가량 앞선 때다.
 
KT 구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야구계에선 그동안 이런 형태로 신고선수를 계약했다. 야구계의 관행이다. 일찍 훈련할 수도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신고선수는 개별적으로 훈련하게 되면 체계적으로 훈련하기 어렵고 돈도 더 많이 든다. 훈련을 일찍 시작하면서 들어오라고 했던 것이고, 격려금도 몇십만원씩 줬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계약 기간에 따라 이들은 지난해 1월까지는 급여나 계약금 월할 계산분을 전혀 지급받지 못한 상태로 훈련을 해왔다. KT로부터 훈련용 방망이나 공을 비롯한 훈련 장비를 일부 지급받긴 했지만 미흡했고, 일부 선수는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하긴 했지만 이는 구단이 선수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필요한 '업무 환경 제공'이다.
 
계약서에는 선수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구단이 계약을 해지하면 잔여연봉을 모두 지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선수가 사회적·법적 물의를 일으키는 등의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같은 계약 내용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단 관계자는 미지급 잔여금액 지급을 요구하는 이들 원고를 향해 ''한국야구위원회(KBO) 유권해석에 따라 지급하지 않는 것이니 더는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묵살했다. 결국 이들은 구단 선수로 속한 기간에 비해 절반의 급여밖에 지급받지 못했다.
 
◇KT위즈가 지난 2013년 9월25~27일 수원 성균관대 야구장에서 2013년도 공개 트라이아웃을 개최했다. 이들은 체력 측정과 실기 테스트를 시작으로 투수 지원자는 하프피칭, 야수 지원자는 펑고와 배팅 테스트를 받았다. ⓒNews1
 
◇절대 '을'이 법적 대응에 나선 이유
 
이들 원고 6명이 훈련을 시작한 2013년 9~11월은 당시 신생팀이던 KT위즈가 선수단 구성과 충원을 목적으로 트라이아웃 등의 절차를 통해 곳곳에서 선수들을 뽑았을 때다.
 
KT는 특별지명을 포함한 정규 드래프트는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선수들을 선발했다. 트라이아웃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선수등록에 결격사유가 없고 대한야구협회(KBA) 선수 등록 기간이 6년 이상인 당시 기준으로 1981~1995년생이면 누구든지 지원할 수 있었다. 사실상 고교생 시절에 야구선수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면 대부분 지원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체력적 부분이 작용하는 직업의 특성상 실제 선발된 이의 다수는 '드래프트에서 지명되긴 했지만 기대 대비 낮은 순위로 지명받아 대학교 진학을 택한 경우', '과거 프로 선수였지만 이전 소속 팀으로부터 방출당해 무적 상태였던 경우' 등이었다. KT의 마법사(위즈)로 거듭난 사람은 기존 프로 선수들의 후배나 선배 혹은 친구 등의 동료였다.
 
그런데 원고 6명이 일방 해고를 당해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끝내 이들이 야구계를 떠나기로 결정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대응을 택한 이유다.
 
이들은 앞서 밝힌대로 구단에게 미지급 잔여금 지불을 청했지만 묵살당하자 KBO로 가서 중재나 도움 등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KBO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KBO는 구단별 65명의 엔트리에 속한 선수가 아닌 신고선수 선발에 관여하지 않았고 따라서 계약서가 KBO에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실제 그동안 신고선수는 구단이 자체 선발했고 구단은 선수 계약의 내용을 KBO에 보고나 통지할 의무는 없다. KBO는 현행 제도상으로는 이번 사안에 관여하기 어렵다. 
 
한국프로야구 발전을 이끈 한 축엔 장종훈(롯데자이언츠 코치), 박경완(SK와이번스 육성총괄)을 시작으로 김현수(두산베어스), 서건창(넥센히어로즈), 손시헌(NC다이노스) 등의 신고선수가 있고, 야구계는 이들의 성장 스토리를 적극 활용해 홍보했다. 하지만 신고선수의 권익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이들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수협도 이들의 외침을 외면했다. "신고선수는 선수협 회원이 아니다"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2000년 1월 창립된 한국 선수협은 창립을 방해하는 세력에 맞서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프로야구 초기에 선수협 설립을 주도했던 故 최동원 감독은 선수 시절 "왜 굳이 앞장서서 선수협을 만들려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대접받지 못하는 불우 동료와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저처럼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앞장섰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고인이 운명을 달리하고 이제는 후배들이 이끄는 선수협은 등록된 선수들의 권익만 보호 중이다. <뉴스토마토>는 이번 사안에 대해 선수협의 책임있는 인사들과 18일 전화통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했지만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제도의 미비와 동료들의 외면에 처한 이들이 기댈 마지막 벽은 법밖에 없었다. 원고 6명이 뭉쳐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며 변호사를 선임한 이유다. 아직 사법부에 소(訴)를 제기하지 않은 이들은 19일 중 구단 조치가 없을 경우 본격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박충식 사무총장(왼쪽)과 서재응 회장이 2014년 12월2일 진행된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시상식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최근 불거진 비활동기간의 훈련에 대한 선수협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준혁 기자)
 
◇한국 야구계 생활 포기한 이들, 더욱 당당하게 사안에 대응한다
 
한국 야구계는 좁다. 10개 구단의 사람들이 동료이고 선후배이며 때로 학창 시절의 은사다. 최근에는 선수단은 물론 지원조직인 프런트에도 선수 출신이 느는 중이다. 고등학교·대학교에 있던 감독과 산하 코치가 프로에 오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더불어 경기의 운영과 선수의 기용은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몫이지만 선수의 선발은 프런트의 영역이다. 자연스레 구단에 향해 강하게 대응하면 스타급 선수가 아닌한 양측에 소위 '찍혀서' 다른 구단에 가기도 어렵다.
 
그래서 원고 6명의 이번 대응은 놀랍다. KBO를 상대로 야구규약에 명시된 FA 제도 독소조항에 대한 법적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야구규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하며 법적분쟁을 벌였음에도 야구계가 다시 받아준 이도형 코치(NC다이노스)의 경우도 있지만, 웬만해선 국내 야구계로 돌아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신고선수라면 더욱 그렇다.
 
원고 6명은 국내 야구계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래서 더욱 당당하게 이번 사안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이들의 법률대리인인 장달영 변호사가 이들을 대리하기 전에 위험성을 수차례 알렸지만 그들은 '대응'을 택했다.
 
이 코치는 소송 후 선수로서 다시 그라운드에 올라설 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 한 언론매체에 객원기자로 글 쓰는 일을 하다가 NC가 그의 능력을 높이 사 작년 코치로 영입했다. 하지만 그는 소송할 때도 당당했고 소송 이후로도 전혀 후회가 없었다.
 
그는 KBO와 소송 당시 "(FA 제도가) 잘못된 것이니 바로 잡아야 한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면서 "힘들다는 걸 다들 인정하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바로 잡고 고쳐야 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승소로 '독소조항'으로 불리던 당시 FA 제도 일부를 개정하는 마중물이 됐다.
 
분쟁은 법원으로 가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수월한 일이다. 원고 6명이 일단 20일까지 KT의 성의있는 대응을 기다리는 이유다. 하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이번 사안은 국내 야구계 비주류와 육성 분야에 대한 이정표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잖다. 신고선수에 대한 분쟁의 공개적 진행은 한국 야구계에서 전례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KBO는 지난 13일 2015년도 제1차 이사회를 통해 기존 '신고선수'를 '육성선수'로 명칭을 바꿨다. KBO 총재와 사무총장 외에는 전원 구단의 사장들이 이사인 이사회도 신고선수의 중요성을 인지한 것이다. 선발한 측이 활용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처우가 나쁘다면 어떤 인재가 선뜻 가려 할까. KT와 야구계의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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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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