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과거사 사건 수임 비리 혐의와 관련한 검찰의 수사가 매섭다. 수임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일부 변호사들은 혐의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은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낸 두 명의 변호사에 대해서도 법리적 반박을 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배종혁)는 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 상임위원을 지낸 김준곤(60·사법연수원 20기) 변호사의 수임 비리 혐의와 관련해 전직 과거사 조사관 노모(41)·정모(51)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두 사람은 김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의 직원으로 근무하며 과거사 사건을 김 변호사에게 알선하고 억대의 알선료를 챙긴 혐의와 이 과정에서 과거사위 활동과 관련한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노씨 등은 해당 돈의 성격에 대해 '조사비'·'인센티브'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오는 5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이르면 당일 밤늦게 구속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News1
검찰이 두 사람에 대해 변호사법 34조의 알선 행위에 대해 수사함에 따라, 사건을 소개 받은 김 변호사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앞서 지난달 31일자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수임 제한 규정'을 둔 변호사법 31조 위반 혐의에 대해선 일부 인정하면서도, 알선 관련 혐의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김 변호사도 노씨·정씨에 대해 "변호사 사무실 직원으로서 월급을 받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조만간 김 변호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과거사 사건 경위와 노씨·정씨에게 전해진 돈의 성격에 대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검찰에 과거사 사건 수임 비리와 관련해 소환 조사를 받은 변호사는 박상훈(54·연수원 16기)·이명춘(56·연수원 33기) 두 사람이다. 지난달 28일 검찰 조사를 받은 이 변호사는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들어준 저에게 찾아와 어쩔 수 없었다"며 혐의를 일부 시인했다.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백승헌(52·연수원 15기)·김희수(55·연수원 19기) 변호사는 지난달 26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백 변호사는 의문사위 근무 당시 관여한 사건은 박정희 정권 당시의 '대전교도소 사상전향 공작 사건'으로, 자신이 변론을 맡고 있는 대전·광주·청주교도소 가혹해위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청구소송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맡은 소송은 의문사위가 아닌 과거사위의 결정을 근거로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News1
그는 두 사건의 차이에 대해 "박정희 정권 당시 사상 전향 강요가 이뤄졌다는 역사적 배경만 유사할 뿐, 사람부터 피해 여부 및 구체적인 가혹행위 내용 등이 전혀 다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착수금이나 성공보수도 받지 않아 경제적 이익도 없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도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은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이었다며,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긴급조치 1호 위반 손해배상 소송과는 다른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 같은 주장을 반박했다. 검찰 관계자는 29일 대법원이 지난 2003년 선고한 한 판결을 언급하며 "여기에 보면 변호사법 31조 사건은 기초가 되는 분쟁의 사회적 실체가 동일하고 실질적으로 동일한 쟁점을 포함하는 사건까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백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전향공작으로 5명이 사망했다고 의문사위가 밝혔고, 이를 기초로 과거사위에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과거사위는 의문사위의 입장을 그대로 원용해 결정한 것"이라며 "하나의 시기, 하나의 장소, 같은 불법행위를 근거로 배상을 신청한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례를 보면 사실상 같은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사위가 장준하 선생 사망원인에 대해선 진상불능 결정을 했지만, 이 당시에도 긴급조치에 의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가 있었다는 걸 인정했다"며 "사실상 같은 쟁점에 대해 소송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임료를 받았는지 여부는 상관없다고 했다.
실제 검찰의 주장대로 의문사위 보고서에는 전향공작과 장준하 선생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 대해 언급돼 있다. 그러나 두 변호사는 소송의 근거에 대해 각각 2009년 과거사위의 결정, 2010년 대법원의 긴급조치 1호 위헌 판결이라며 검찰 수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결국 해당 사건을 '같은 쟁점 사안'으로 볼 수 있을지를 두고 수사 과정 등에서 양 측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현재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변호사 7명 중 6명이 소속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검찰 수사에 대해 "민변에 대한 표적·보복 수사"라면서도 "개인 변호사가 사적으로 수임해 진행한 업무다. 개별 변호사들이 수사과정에서 사실관계 및 법리적인 문제점을 밝히고, 필요하다면 법적·도의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