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문애경기자] 제약산업은 공공적 측면과 산업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산업이다. 그런데 그동안 제약 정책은 산업 육성보다는 규제에 무게 중심을 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정부는 산업 육성에도 힘을 싣고 있다. '2017년 세계 10대 제약,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을 목표로 다양한 육성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는 지금은 화려한 육성책보다는 '규제 합리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약 해외진출 막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 개선 시급
가장 개선이 시급한 규제로 사용량 약가 연동제가 지목되고 있다. 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의약품 사용량이 증가하면 약가를 인하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가 국산신약들의 해외진출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이 제도가 다른 약가인하 제도와 맞물리면서 신약의 가격이 오히려 복제약보다 낮아져 글로벌 시장에 낮은 가격으로 진입하는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일양약품(007570)의 항궤양제 놀텍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09년 국산신약 14호로 발매된 놀텍은 지난해 109억원 처방실적을 기록하며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역류성 식도염 효능이 추가돼 판매량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약가를 깎았다. 그럼에도 매출이 늘어나자 다시 약가를 인하했다.
놀텍은 2009년 12월 발매 이후 지금까지 4차례 약가가 인하됐다. 그중 3번이 사용량 약가 연동제와 관련된 조치다. 놀텍의 가격은 1405원에서 1192원으로 인하됐다. 처음 출시됐을 때보다 15.2% 가격이 떨어진 셈이다.
보령제약(003850)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도 매출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3월 807원에서 781원으로 약가가 인하됐다. 카나브는 지난해 원외처방액 286억원을 기록했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해외에 수출할 때 국내 가격이 반영되기 때문에 낮은 가격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며 "많은 비용을 투자해 신약을 개발하더도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부담이 있어 신약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는 "국산신약은 대부분 혁신적 신약이 아니고 기존 약제의 효능이나 안전성을 개선한 것이어서 대조약제와 비교해 약가를 결정하는 현 제도 하에서는 낮은 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여기에 다양한 약가인하 제도까지 적용되면서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의지가 좌절되고 있는 만큼 신약과 제네릭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여 전무는 이어 "다른 나라는 신약에 대해 별도의 보너스를 지급함으로써 신약개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국산신약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약가에 반영하는 등 신약 개발에 들어간 비용,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제 개선과 관련해 약가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재국 한국제약협회 상무는 "최근 일괄 약가인하 등 약가제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약가제도는 시민사회단체, 업계 등 관련 분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겠지만, 제약기업 입장에서는 약가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R&D 투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용량 약가 연동제로 약가가 인하된 국산신약. 왼쪽부 터 놀텍, 카나브(사진제공=일양약품, 보령제약)
◇정부 주도 R&D 환경 조성돼야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R&D)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국 제약협회 상무는 "정부는 제약산업에 대한 R&D 지원 규모를 연간 최소 1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선택과 집중의 원칙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들도 함께 보조를 맞춰 R&D 투자를 늘림으로써 경쟁력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상무는 또 "신약개발 촉진을 위해서는 기초 연구나 공익적 목적의 연구에 국한하지 말고 혁신형 제약기업, 연구중심병원 등이 수행하는 임상시험에 대해서도 시험약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약개발과 관련한 부처간 협조체제 구축도 시급하다.
여재천 신약조합 전무는 "우리나라가 제약강국으로 가려면 신약개발과 관련한 보건복지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3개 부처의 협조가 우선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신약 임상연구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고 신약개발 펀드조성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