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민호기자] '쥐가 고양이를 물었다'
보험업계와 소비자들간에 보험료 인하를 두고 파열음이 잇따르고 있다.
한 소비자 단체는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는 15개 손보사 가운데 12곳이 사업비를 초과 집행한 것으로 나타나 펑펑 쓰고 있는 사업비만 줄여도 보험료를 당장 인하할 수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이들 사이에 낀 금융감독원은 샌드위치 신세다. 빗발치는 보험료 인하요구를 앞에 두고 보험사 눈치보느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던 쥐가 결국 고양이를 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 구두신고 발바닥 긁는 격
지난 23일 금감원은 지난해 손해보험사의 지출 보험금 비율이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적정 보험료를 책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보험료는 자율화돼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다.
손보사들은 경영 여건이 좋지 않다며 벌써부터 보험료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적정한 수준으로 책정하도록 유도한다고 하지만 신을 신은 채 가려운 발바닥을 긁는 것 처럼 일이 영 시원찮다. 애써 하려 하지만 그만한 효과를 거두기 힘들어 보인다.
손해율이 올라가면 보험료를 재빨리 올리면서 손해율이 떨어질 때는 꿈쩍도 하지 않자 소비자들은 더욱 아우성이다.
금융감독원이 잇따른 소비자들의 민원에 떠밀려 보험사들의 실태 점검에 나서지만 귀따가운 소리가 들려야만 움직이는 '뒷북 행정'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금감원이 자동차보험의 실태 점검에 나선 것은 지난해 손해보험사들이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자동차보험료를 내리지 않아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때문이다.
지난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69.8%로 6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순익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던 지난 2007년 회계연도 이익을 뛰어 넘었다.
실제로 삼성화재, 동부화재, 현대해상, LIG손보, 메리츠화재 등 5개 주요 손보사들의 지난해 순익은 1조969억원으로 지난 2007년 1조564억원에 비해 3.8% 증가했다.
여론을 더욱 들끓게 한 것은 보험사들이 물쓰듯 펑펑 쓴 사업비였다.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삼성화재와 LIG손보, 동부화재 등 5개 주요 손보사는 무려 1조8095억 원의 사업비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 눈치만 보는 금감원
금감원은 실손의료보험 중복보험과 관련해서도 소비자단체에 떠밀려 어정쩡한 대책을 내놓고 보험업계 눈치만 보느라 쩔쩔 매고 있다.
금감원은 보험소비자연맹의 중복보험 가입에 대한 문제를 수차례 제시하자 부랴부랴 중복가입 여부를 의무화한다고 밝혀 '뒷북 조치'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생보사들은 금감원의 시정조치에 따라 가입 전 중복가입 여부 체크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손보사들은 지난 2007년 두 차례나 금융감독원의 시정지시를 받았음에도 이에 불응한 바 있어 소비자들의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손보사들은 오는 9월부터 실손의료보험을 판매할 때 고객이 같은 상품에 이미 가입했는지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금감원은 손보사들로 하여금 전화로 점검하고 녹취하도록 지시했으며, 손보협회는 이에 빠른 시일내에 중복가입 현황과 조회가 정확히 이뤄지도록 전산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애써 내놓은 대책이 되레 화근이다. 생보·손보간 불협화음만 일으키고 있어서다.
생보업계에서는 "지금까지 실손보험의 중복 가입 허용으로 손보사들이 보험료를 과다하게 받아챙겼다. 또 이번 금감원의 조치에 '중복가입 불허'라는 핵심이 빠졌다"며 불만을 제기해 실손의료보험 시장을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금감원의 애매한 뒷수습과 이 틈을 탄 보험업계의 영역 싸움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골탕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