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공무원연금개혁과 성과연봉제 도입, 공공기관 경영정상화 등 공공부문 개혁과 관련된 굵은 이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공공노조가 이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역할론까지 붉어졌다. 공공노조는 공공개혁에 저항하기 위해 파업도 불사할 방침이지만 국민이 외면하는 상황까지 겹쳐 사면초가다.
10일 국회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등에 따르면 여·야와 정부, 전공노 등으로 구성된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가 이날 오후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중간합의문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문은 대타협기구가 활동시한을 2주 남긴 가운데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원칙을 합의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적 대안보다 중장기적 재정건정성을 고려하면서 퇴직 공무원의 안정적 노후소득을 보장하자는 다소 선언적인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하기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News1
하지만 합의문을 놓고 공무원노조 내부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국민의 60%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지하는 데다 재정고갈을 막기 위해서라도 연금개혁에 동참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합의안 도출은 공적연금 강화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돼서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공무원노조 내의 갈등은 공공노조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정부·여당의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이라는 역할과 근로자로서의 권익추구를 동시에 하려면 공공노조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노선을 놓고 내부갈등이 불가피해서다.
실제로 국내 100여개에 달하는 공무원노조 단체들은 연금개혁 방향을 두고 저마다 다른 주장을 내놓으며 이합집산하고 있다. 공노총만 봐도 애초 전공노 등과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해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응했으나 정부와 연금개혁 협의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독자행동을 벌이는바람에 다른 노조단체들의 빈축을 샀다.
회원 수가 가장 많다는 전공노 역시 공무원노조 단체의 대표격으로 대타협기구에 참여했지만 공무원노조 내 노선 갈등과 대립으로 대타협기구가 몇번씩 파행됐을 정도다.
문제는 공공노조가 노선을 놓고 좌충우돌하면서 이슈는 따라가지 못하고 정부·여당이 주도한 이슈 프레임에 매번 끌려다니면서 공공성 강화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발전노조)에서도 확인된다. 발전노조는 한국전력 산하 5개 발전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의 차장급(3직급) 아래 직원들로 이뤄진 단체다.
발전노조는 지난해부터 정부가 에너지공기업 경영정상화를 강행하자 정부와 대립 중이다. 경영정상화 내용이 성과연봉제 도입, 복리후생 축소, 임금과 성과급 동결 등 사실상 현장 근로자 중심인 발전사 직원들의 실질소득을 깎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양새는 정부가 공기업 경영정상화를 거의 관철시킨 듯 하다. 발전노조가 경영정상화에 대응할 공공성 강화 모델이나 정책 대안보다 직원 복리후생 축소 문제만 매달린 탓에 방만경영 척결을 명분으로 한 경영정상화를 막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발전노조 내에서는 노조 지도부가 정부·사측과 유착했다는 주장까지 나왔고, 발전노조 내에서는 공공부문 개혁에 맞서자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여전히 부닥치는 상황이다.
발전노조 관계자는 "공기업과 공무원들은 공공성, 즉 국민의 권익과 복리를 위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민영화·친기업 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노조가 정부를 가장 강하게 압박하면서 체감적 파급력이 가장 큰 수단은 공공부문 파업이지만 이마저도 선택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공무원노조는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대하기 위해 공무원 집단 파업을 결의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실행하지 못 했다.
'철밥통', '복지부동' 인식이 강한 공무원의 파업을 국민들이 마냥 지지하지 않아서다. 공공노조 관계자는 "파업이 장기화될 수록 국민 지지를 잃어 공공노조만 고립되고 정부·여당이 버티면 애초 파업을 통해 목적한 바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점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4월 중으로 개혁할 태세고, 에너지공기업 경영정상화 등 구조개혁은 전력시장 민영화를 염두에 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속전속결이다.
하지만 공공노조가 정부와 여당을 따르느냐 마느냐로만 고민하고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고민은 뒷전으로 미룬 탓에 "노(勞)조가 아니라 노(No)조가 됐다"는 탄식이 들릴 만큼 역할을 위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