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민호기자] 쉬지 않고 걸어온 삶의 피로.
30여년간 평생을 바쳐온 회사로부터 '오렌지처럼 알맹이만 쏙 빼먹고 껍질만 던져버리듯' 감원 바람을 피할 수 없다.
실업의 공포는 한국경제의 허리에 해당하는 40~50대 가장의 자리마저 흔들고 있다.
혹독한 세상사에 지친 이들에게 안식을 주는 곳은 가정. 금융기관들이 이 시대의 키워드 `아버지`를 놓칠 리 없다.
◇ '아빠를 부탁해'
외환위기 시절 ‘아빠 힘내세요’라는 한 카드회사 광고 이후 경기 불황에 어깨가 축 처진 아빠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다.
힘들땐 역시 '아빠' 광고가 최고다.
모진 세상살이에 대중의 심금을 가장 잘 파고드는 것은 ‘가족'. 지난해 세계경제가 늪에 빠진 이후 광고계에서는 일제히 '아빠 기(氣) 살리기' 프로젝트를 담아내느라 바빴다.
기업은행은 다소 직설적으로 경제위기에 허덕이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현재 모습을 조명했다.
아빠 공장이 힘들어 학원을 더이상 다니지 못하게 된 한 초등학교 여학생.
'아빠 공장이 힘들어서 이제 학원 못 간다. 아빠는 ‘정은아 미안해’ 하신다. 난 괜찮은데'
하지만 아이는 오히려 자기가 아빠의 용기를 북돋아 주면 좋겠다며 아버지들의 '왕년의 시절'을 아련히 되살려주는 따뜻함을 표현했다.
'김 부장, 입사한 지 얼마나 됐지'라는 질문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며 45가지 걱정거리를 쏟아낸던 김 부장.
이는 연민 어린 시선으로 정신없이 살아야만 했던 아버지 세대를 위로함과 동시에 아버지 그리고 가족이 위안과 힘을 얻기 위한 시대의 모습이다.
지난 27일 푸르덴셜생명보험에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정을 위해 경제적으로 대비해야 할 리스크에 대해 남성의 4명 중 1명 꼴로 ‘본인의 죽음’을 1순위로 꼽았다.
여기에 가정을 책임지고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재무 목표 중 세 가지를 꼽아 보라는 질문에 남성이 가장 많이 선택한 답변은 ‘본인이 예기치 않게 죽거나 다칠 경우, 내 가족이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46%)’이었다.
◇ '내 가족만큼은..' 보장성 보험 급증
가장의 삶이 힘에 부치는 때일수록 유사시에 내 가족만큼은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보호심리가 강하다.
주식시장이 강세를 나타내던 지난해 상반기까지만해도 생명보험업계의 주력상품이었던 변액보험의 인기는 뚝 떨어지고 보장성 보험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보험업계도 경기침체로 목돈이 필요한 저축성 보험보다는 적은 돈으로 사망ㆍ질병ㆍ재해 등에 대비할 수 있는 보장성 보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을 간파해 보장성 보험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생명 라이프케어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입한 생명보험 상품중 보장성 보험과 금융형 보험의 가입비율은 75 대 25로 보장성 쪽이 훨씬 많았다.
보장성과 금융형의 가입 비율이 40 대 60 정도였던 지난해 추세와는 상반된 결과다.
실제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동부화재, LIG손해보험 등 국내 4대 손보사들의 지난달 보장성보험 신계약 실적은 모두 681억원으로 지난 2월 338억원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저축성 보험 판매비중이 높았던 외국계 보험사들도 결국 보장성보험 중심으로 영업 방침을 선회하고 있다.
INGㆍ푸르덴셜ㆍ알리안츠 등 외국계 보험사들은 70~80%에 달하던 저축성 보험 판매비율을 50~60%대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조세훈 ING생명 재정설계전문가는 "지난달에 보험료가 오른다는 점이 알려져 가입률이 높아진 면도 있지만 불황에 자신과 가족의 안전부터 챙기자는 인식이 강해져 보장성 보험 가입이 늘어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