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같지가 않다

오늘 부는 바람은

입력 : 2015-03-26 오전 9:31:00
“봄인데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어.” K가 말했다. 과연 밤공기가 쌀쌀했다. K는 맥주나 마시자며 나를 상수역으로 불렀다. 일을 마치고 자기소개서를 쓰다 나왔다고 했다. 그녀는 낮에는 인턴 일을 하고 밤에는 취업 준비를 한다. ‘봄인 줄은 아는 걸까’고 생각했다. 사무실 조명 아래서, 책상 스탠드 앞에서 앞날을 준비하는 그녀에게 햇살을 느낄 시간은 없었을 게다. 새벽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니 아직 춥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낮에는 따뜻하던데.” 속없는 소리를 뱉고 말았다.
 
◇사진=바람아시아
 
지난달 체감실업률이 지표 작성 이후 최대치인 12.5%를 기록했다. 공식실업률보다 세 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실업률 지표와 달리 체감실업률은 임시직, 일용직 등 불완전취업자와 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를 포함한다. 대부분의 20대 취업준비생들은 통계상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학생인 채로 취업을 준비하거나 인턴, 아르바이트 등과 구직을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이들은 실업자가 아니지만 인턴과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취업했다고 축하받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통계와 일상의 간극, 체감실업률이 생긴 배경이다.
  
체감 기온이 낮은 것은 바람과 습도 때문이지만, 체감실업률이 세 배나 높은 것은 불안 때문이다. 아무데도 속하지 않은 채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20대, 갓 졸업한 대학생에게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평생을 어딘가에 소속된 채로 살았을 테다. 졸업을 연기하고 인턴 자리를 알아본다.
 
인턴으로 일하는 K는 일은 하는데 취업은 못했다. 매일 아침 직장인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그들과 같은 곳에서 그들이 하는 일을 함께 하지만 취업은 아직 못했다. 밤에는 늦게까지 자기소개서를 쓰고 영어 공부를 한다. 이동시간을 쪼개 쓰고, 주말을 포기해도 항상 시간이 부족하니 자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일 일하러 가야하니까, 오늘 같은 하루가 또 기다리고 있으니까. 불안감은 애써 지우고 눈을 붙인다.
 
그녀는 날 불러내놓고 재미없는 이야기만 한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 미안하다니 해줄 말이 없었다. 일하고 공부만 하는데 재미있는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어차피 기대 안했다고, 계속 재미없어도 된다고 농을 쳤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미안한 것은 그만큼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보통 고민 같으면 술 한 잔에 털어 넘길 그녀지만 지금 끌어안은 것은 답이 없고 무겁기만 하니 듣는 사람에게 미안할 밖에.
 
주요 대기업 절반 이상이 올해 상반기 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가 절반 이상 지나간 것을 생각하면, 아직 채용 계획을 밝히지 않은 기업은 사실상 채용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 이렇게 추워, 봄 아닌 것 같아.” 술집을 나서며 K가 말했다. 낮에 돌아다니면 봄이 온 줄을 알 텐데. 하긴, 불안이 가득한 마음에 봄볕이 살가울 리 없다. 일기예보는 주말마다 나들이를 권하지만, K는 이번 주말에도 영어 공부를 할 게다. 꽃이 곧 피어날 테지만, 그녀의 회사 근처엔 꽃나무가 없다.
 
 
 
 
조응형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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