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남미 지역에 대한 중국과 이란, 러시아의 영향력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브라질 일간 폴랴 데 상파울루가 2일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은 중남미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다"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전날 발언 내용을 소개하면서 미국 정부가 이들 국가의 영향력 확산을 막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경쟁국인 중국 및 러시아와 '적국'인 이란이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중남미 좌파정권들과 갈수록 돈독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사실을 주시하고 있다.
클린턴 장관은 이 같은 상황을 미국-중남미 관계를 흔들 수 있는 일종의 교란 요인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특히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고 있으나 오는 6일 이루어지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이 적지않게 신경 쓰이는 눈치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등과 깊숙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중남미 최대국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에 대해서도 손을 내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난 2007년에만 3차례에 걸쳐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차베스 대통령과 경제.통상 및 에너지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2년 전부터 양국 합작회사인 베니라우토(Venirauto)가 만든 '반(反) 제국주의' 차량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모랄레스 대통령과는 향후 5년간 1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핵개발 계획을 위해 볼리비아의 우라늄 및 리튬 광산 개발 투자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니카라과에 대해서는 지난해 수 천채의 주택과 1억2천만달러 규모의 수력발전소 건설, 농업 발전을 위한 금융지원을 약속했다. 에콰도르와는 이란 수출개발은행을 통한 4천만달러의 차관 제공을 포함해 8천만달러의 금융지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브라질 방문에서는 룰라 대통령과의 정상회의를 통해 경제.과학기술.문화 분야 등의 협력 협정이 체결될 예정이다.
브라질 정부는 자국산 제품 수입 확대를 조건으로 국책은행인 경제사회개발은행(BNDES)을 통한 금융지원을 추진 중이며, 2004년부터 이란 유전개발 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Petrobras)의 투자 확대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의 중남미 지역에 대한 공략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베네수엘라에 120억달러, 에콰도르에 10억달러, 아르헨티나에 100억달러, 브라질에 100억달러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와 관련, 브라질의 또다른 유력 일간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는 지난달 중순 "미국이 중남미와의 관계 복원에 나서고 있는 사이 중국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중남미 간의 교역도 최근 10년간 급속하게 확대돼 왔으며, 현재는 중국이 미국에 이어 중남미의 2위 교역국으로 떠오른 상태다.
러시아 역시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에너지 및 군사 분야에서 협력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클린턴 장관은 "중국, 이란, 러시아의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 강화는 상당 부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부시 전 대통령이 차베스 대통령과 모랄레스 대통령, 오르테가 대통령 등 좌파정상들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정책이 중남미 지역에서 반미(反美) 정서를 낳은 반면 중국, 이란, 러시아에는 다가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반(反) 부시' 감정에서 비롯된 반미 정서를 해소하기 위해 중남미 국가들에 잇따라 화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17~19일 열린 미주정상회의에서는 부시 전 대통령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차베스 대통령 및 코레아 대통령과 기꺼이 악수를 했다. 쿠바에 대한 제재 완화 조치를 취한데 이어 미국 기업의 쿠바 통신부문 투자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 내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부시 전 대통령 정부 8년간 중남미 지역에 생긴 '미국의 공백'을 오바마 대통령 정부가 채우는 데는 적지않은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위기라는 상황을 이용한 중국의 거센 공세와 이념적 동질성을 앞세운 이란의 접근 강화는 미국이 표방하고 있는 새로운 미국-중남미 관계 구축 노력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상파울루=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