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 사는 존 구드윈씨는 지금 모아브 협곡 절벽 위에 매달려 있다. 안전밧줄 하나 없는 맨몸이라 불안하지만, 등에 멘 낙하산에 의지해 베이스 점프를 시도한다. 그러나 바닥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다. 그가 체념하는 순간 땅이 사라지면서 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다소 황당할 수 있겠지만, 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노스페이스 맨해튼 지점은 최근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한 마케팅을 시작했다. 구드윈씨도 거기서 벌이는 행사에 참여했다가 짜릿한 경험을 한 것이다.
VR 헤드기어만 쓰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고 하이킹, 암벽등반, 스카이다이빙 등 다양한 엑티비티도 즐길 수 있다. 덕분에 일부 매니아들 층의 놀이기구로 쓰이던 VR 기술이 이제는 오프라인 소매점의 판매 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 가상의 체험이 제품 구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매업체들은 온라인 쇼핑몰에 빼앗긴 권좌를 오프라인 매장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들떠있다.
◇시연자가 스마트 탈의실 거울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종합 반도체회사 인텔은 최근 '스마트 탈의실 거울(smart dressing-room mirror)'을 선보였다. VR 기술과 연동된 이 거울 앞에 서면 손짓으로 입고 있는 스웨터의 색상을 바꿀 수 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기 위해 탈의실을 오가지 않아도 된다. 옷이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지도 확인해 볼 수 있다. VR 헤드기어를 쓰고 하와이 해변이나 파리 에펠탑으로 가 새로 고른 옷이 거기에 잘 녹아 드는지를 미리 보는 것이다.
홈 인테리어 업체 로우스도 VR 기술을 마케팅과 접목했다. 고객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원하는 아이템을 선택하면, 상상 속에만 있던 고풍스러운 가구와 고급 벽지, 바닥 타일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진다. 고객은 모델 하우스를 돌아보듯, 가상의 집을 꼼꼼하게 살펴본 뒤 인테리어 수리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로우스는 한발 더 나아가 초현실적인 미래 가정의 모습을 연출하고자 공상과학 작가까지 고용했다. 한 가상현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에 중점을 둔 VR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VR 기술이 마케팅에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풍경을 시뮬레이션 하려면 며칠간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데다 기업이 지불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일부 고객은 기껏 만들어 놓은 VR이 시시하다며 실망하고 물건 구매를 거부할 수 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