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SLBM 실전 배치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인터뷰] 정세현 전 장관 "김정은 통치 행태, 권력자들의 일반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입력 : 2015-05-18 오전 11:55:26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4월 하순에 마무리되면서 5월 이후 남북관계가 풀릴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와 서해 ‘조준타격’ 경고 등으로 긴장지수를 높이고 있다. 남측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군부 2인자가 숙청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동북아시아 전체로 보자면, 4월말 미·일 정상회담과 5월초 중·러 정상회담을 거치며 미·일과 중·러가 맞서는 구도가 뚜렷해졌다.
 
한국이 어디에서 실마리를 잡아야 할지 쉽지 않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까칠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도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만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남북관계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인 김대중 정부 말기와 노무현 정부 초기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경험을 토대로 한 제언이었다.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 어떻게 평가하나.
 
SLBM 초입단계 시험에 성공한 것이다. SLBM을 싣고 다녀야 하는 잠수함을 만드는 데에도 앞으로 시간이 걸릴 것이다. SLBM에 핵탄두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핵탄두를 소형화·경량화해야 하는 숙제도 있다. 세 번의 핵실험으로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SLBM 위협에 방심해서는 안 되지만, 실전 배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여당 의원들은 엄청난 위협이 당장 있을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워스트 케이스 시나리오’만으로 정부의 대응이 안일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애국하는 길 같지만 실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국방부는 비교적 차분하게 대처했다. 청와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와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장관회의가 열려 국방부 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일 텐데, 잘못된 것이었다. 안보 문제에서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관계를 정리한 후 국민들에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 보수언론의 ‘겁주기 보도’를 보고 정부가 여론에 영합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최근 동아시아 정세와 북한의 행동을 평가한다면?
 
중국이 말하는 ‘중화부흥 프로그램’이나 ‘중국몽 실현’은 2차 대전 후 미국이 동아시아에 구축한 기득권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자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핵·미사일을 핑계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1차 타깃이 된 북한은 ‘우리를 건드리면 다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남측 함정이 서해 북측 영역을 침범하면 조준 타격하겠다고 경고하거나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는 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
 
최근 미·일 정상회담과 중·러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미·일 vs 중·러’의 각축은 뚜렷해졌다. 그 사이에 한반도가 끼어 있다. 남과 북이 관계를 개선하지 못 하고 쪼개진 상태가 계속되면, 북한은 불가피하게 중·러 쪽으로 붙어야 하고 우리 역시 ‘한·미·일 3각 동맹’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의 탈출구는 어디에 있나.
 
19세기 말 일어난 청일전쟁 이후 동북아에서의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한반도는 지진으로 비유하자면 ‘대륙판’과 ‘해양판’이 부딪히는 곳이다. 한반도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손을 잡아야 한다. 북한을 향해 ‘남북관계의 진정성을 보이라’고 요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시간이 없다. 한반도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은 북한에 없다. 경제적으로나 국제적 위상으로 볼 때 우리가 훨씬 더 우위에 있다. 그 점을 십분 활용해 먼저 다가가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은 당장의 긴장 완화에도 물론 도움이 된다. 남북관계가 꾸준히 이어지면 북한의 대남 군사 위협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랬다. SLBM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쏴대는 북한에 대해 ‘호전적이다’라고 딱지 붙이고 돌아서지 말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 적어도 북한이 남쪽을 향해서는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한국의 외교적 위상도 올라갈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어떤 원리인가.
 
원리나 논리 보다는, 과거 경험을 얘기해 주면 실감이 날 것이다. 2002년 2차 북핵 위기 발발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시작된 것부터가 남북관계의 성과였다. 장관급회담 등 각종 남북회담을 통해 6자회담에 나오도록 북한을 설득했다. 6자회담이 열리면 한국은 북핵문제의 실질 당사자인 북·미 사이에서 양측의 의도와 본심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며 회담을 이끌었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나 주한 미국대사가 통일부 장관실로 찾아온 일도 있었다. 북측에 요구하는 사항을 남측에 우선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이 볼 때, 북한이 남한의 말은 듣는다는 사실이 검증됐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남북관계가 전혀 없던 과거의 한미관계에서는 볼 수 없던 장면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가 미·북간 거리를 어느 정도 좁혀 놨으니 빨리 회담을 열어 합의서를 만들라’고 요청해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중국도 한국의 주문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역시 남북관계를 통해 우리의 위상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정부가 5월 들어 남북관계를 풀어보자는 사인을 보내긴 했지만 북한은 모르는 척 하고 있다. 북의 호응을 이끌어 내려면?
 
북한이 사실상 대화의 조건처럼 내걸고 있는 몇 가지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 대북 전단 금지, 군사훈련 중단, 통일준비위원회 해체, 5·24 조치 해제 등이 조건이다. 우선 대북 전단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금지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 군사훈련은 아주 없앨 수는 없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도 놀랄 만한 물량이 투입됐던 2013년 훈련처럼만 하지 않으면 된다.
 
통일준비위는 북한이 해체하라고 해서 해체할 수는 없지만, 북한을 자극했던 관련자들을 해촉한다거나, ‘학자적 상상력으로 흡수통일을 언급했지만 대통령의 뜻은 아니다’는 식의 말 한 마디만 해주면 된다. 5·24 조치는 남북대화를 통해 풀 수 있다고 했으니 그래야 하겠지만, 고위당국자가 ‘북이 회담에 나오면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사인을 확실히 보내야 한다.
 
-북한 ‘김정은 체제’ 3년을 돌아볼 때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시장경제 원리를 상당히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점을 꼽을 수 있다. 2002년 7·1 경제개선관리조치를 지휘하다가 밀려났던 박봉주 내각총리가 김정은 시대에 다시 총리가 됐다. 7·1 조치는 시장경제 원리 도입이 핵심이었는데, 현재도 그와 유사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성과는 식량생산량에서 나타났다. 북한의 식량 자급률이 과거 65%에서 최근 90%로 늘었다는 국제기구의 통계가 있었다. 박봉주 내각이 추진하는 정책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농업 생산에서 가족단위로 농사를 짓게 하는 ‘포전담당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북한 경제가 좋아지는 것은 향후 통일비용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에 시장경제 요소가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을 밀어줄 필요가 있다.
 
-재작년 장성택 처형과 최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설, 그리고 최룡해와 황병서가 ‘2인자’ 자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현상은 어떻게 해석하나?
 
권력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쓰는 일반적인 기술이 발휘된 것으로 본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도 실질적인 2인자를 이 사람 저 사람으로 바꿔가며 18년간 권력을 유지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룡해와 황병서를 번갈아 가며 2인자로 기용하고 장성택 등을 숙청하는 것은 김 위원장의 위상이 흔들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위상이 확고하다고 봐야 한다. 그 위에 더 확실한 충성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통치 기술로 봐야 한다.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에게 배운 통치술일 수도 있지만, 권력자 자리에 가면 동물적으로 그런 판단이 올 수도 있다.
 
황준호·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2일 이화여대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성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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