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설을 계기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통치스타일이 주목을 받고 있다.
권력의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용인술, 군 고위 간부들의 견장에 별을 뗐다 붙였다 하는 이른바 ‘견장정치’, 문제 인사를 면직시키고 강제수용소로 보내거나 처형시키는 숙청 등이 통치의 특징으로 꼽힌다.
그 중 가장 자주 나타난 행위는 숙청이다. 고모부이자 권력 이양의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을 처형하는 장면이 결정판이었다. 김정일 위원장 운구차를 호위한 8인방에 속해 있으며 김 제1비서 집권 초기의 실세그룹이었던 리영호 전 총참모장과 우동측 전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의 해임도 중요한 숙청 사례였다. 국가정보원은 김 제1비서가 2012년 공식 집권한 후 처형된 간부들이 70여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장성택 처형의 다른 의미는, 김 제1비서가 2인자를 두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해 이후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세 번씩이나 2인자 자리를 맞바꿨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었다.
견장정치는 김정은 시대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리영길 군 총참모장 등 웬만한 군 고위 간부 중에서 계급이 강등되지 않았던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일각에서는 김 제1비서의 이같은 ‘공포정치’는 북한 권부 내부의 이상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북한 조기 붕괴론의 근거’로 곧장 나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정보기관 관계자들이나 상당수 전문가들의 판단은 다르다. 당장 북한 체제가 불안해지는 징후로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김 제1비서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 사후 3년여 동안 탄탄한 권력 기반을 갖췄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가 많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인자를 허용치 않는 부분에 대해 “권력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쓰는 일반적인 기술이 발휘된 것”이라며 “김정은의 위상이 확고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숙청이나 계급 강등을 수시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김정은의 권력이 현재로서는 안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며 “권력 엘리트들의 갈등으로 체제가 붕괴할 것으로 예상하는 건 성급하다”고 강조했다.
2012년 미국의 유명 정치학자인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등이 펴낸 책 <독재자의 핸드북>은 김정은 3대를 비롯한 세계의 거의 모든 독재자들은 숙청과 같은 인적청산 방식을 자주 써 왔다며, ‘숙청으로 민심 이반이 심해져 체제가 붕괴할 것’이란 생각은 외부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김 제1비서가 장성택 같은 실직적인 2인자까지 숙청할 수 있는 힘을 뒷받침하는 조직적 기반으로는 당 조직지도부가 꼽힌다. 조직지도부는 고위 간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문제가 적발되면 처벌하는 일을 총괄 지휘한다. 그 과정을 김정은 비서에게 수시로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비서의 측근인 황병서 총정치국장, 친위그룹으로 분류되는 조연준 당 제1부부장은 모두 조직지도부 출신이다. 장 선임연구원은 “숙청이 잦은 것은 당·정·군의 정책 집행 세력과 맞서는 조직지도부 중심의 관료들이 살아 있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제1비서가 공포정치를 계속 구사할 경우 그의 리더십에 대한 북한 엘리트 내부의 평가와 인식은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취약하게 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추진하는 정책을 무리하게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숙청과 같은 통치 행태가 나오는 것”이라며 “실제로 일을 집행해야 하는 기술관료 중심의 엘리트들은 불만을 가지거나 좌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력 엘리트들의 이반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고, 결국 김정은이 제 발등을 찍는 셈이다”라고 덧붙였다.
한 전문가는 “마오쩌둥 시절 중국의 최고 권력집단에서는 청산해야 할 인물이 있으면 유배를 보내거나 스스로 사라지도록 유도했다”면서 “지금 북한에서처럼 직접 처형을 해버리면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으로 세력간·인물간 극한 갈등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