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대학의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취업정보게시판을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청년들의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기업의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청년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낮은 급여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를 저렴하면서 약한 내구성에 단기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이케아 가구를 합성한 ‘이케아 세대’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 중에서도 ‘인구론’(인문계 대졸자 90%가 논다)과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인문계를 졸업한 취업준비생(취준생)의 취업난은 극히 열악하다. <뉴스토마토>는 인문계 대졸자들의 현실을 심도 있게 분석해봤다.
대학생 및 대졸자 10명 중 8명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학교와 전공을 선택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와 전공을 바꾸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취업난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대학생 및 대졸자 566명을 대상으로 ‘대학 진학’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학교와 전공을 선택할 의사가 있다’는 학생이 87.9%나 됐다. 이중 22.4%가 ‘좋은 조건의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였다.
설문에 조사한 취업준비생 A씨는 “관련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것이 어려운데다 고졸채용이 늘어나고 있어 대학에 진학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며 “재수생 시절 이공계에서 인문계로 전과했는데, 지금은 이공계 학생들이 취업이 잘돼 부럽다”고 말했다.
A씨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학생이 많다는 것은 다양한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서울대 공대 복수전공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1년에는 한 명도 없었던 문과생이 2015년에는 22명이 컴퓨터 공학부를 복수전공으로 지망했다. 성균관대의 문과출신 공대 복수전공자는 2012년 5명에서 지난해 57명까지 늘었다. 다른 대학들도 비슷한 추세다.
◇평균에 못 미치는 인문계 대졸자 취업률
인문계 대졸자들의 취업난은 다른 전공에 비해서도 더욱 열악하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인문사회계 대학생 교육훈련 요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4년제 대학의 취업률은 54.8%이다. 이중 철학과 사학과 등의 인문계열의 학생의 취업률은 45.5%이며, 사회계열은 54.1%다. 예체능 계열이 41.4%로 가장 낮았다.
반대로 이공계 분야는 65.6%였으며, 의약 분야는 72.1%로 비교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은 취업 사교육에 투자를 하려는 의사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취업에 실패하는 학생들이 많아 무의미한 사회적 비용이 크게 들고 있다”며 “인문사회계열 대졸자의 저조한 취업률로 인한 인문사회계열 회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3월 서울시교육청이 밝힌 전국연합학력평가 응시 현황에 따르면 고2 학생 중 과학탐구를 선택한 이과 학생은 전체의 44.8%로 고3 학생 과학탐구 응시율(39.6%)보다 5%포인트 이상 높았다.
이는 ‘인구론’이 등장할만큼 인문계 대졸자의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고교생의 이과 선호현상이 늘어나는 것을 반영한다.
◇심화되는 기업의 인문계 기피현상
최근 기업가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관심이 높다. 신세계그룹이 인문학 중흥 사업에 나서는가 하면 삼성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융복합형 소프트웨어(SW) 인재’를 강조했다. 이는 인문계 학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문계 졸업자들의 정규직 취업률은 낮다.
인문계 대졸자들은 이공계열 학생들보다 취업률이 낮은 것은 물론 정규직 전환에서도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2년 대졸자 대상으로 18개월뒤 표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공계 출신의 정규직 비율은 70.5%인데 반해 인문계는 51%에 그쳤다. 다시 말해 2명중 1명은 비정규직이며, 기업들이 인문계 출신 채용을 기피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국내경제를 이끄는 게 전기·전자, 자동차 업체들이다보니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공채 원서 접수를 마감한 자동차 대기업은 이공계를 우대한 개발 및 플랜트 부문은 정기 공개채용을 하지만, 전공이 무관한 전략지원 부문은 상시채용을 하겠다고 공고했다.
변지성 잡코리아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대기업 대부분이 개발 분야는 꾸준히 정기 채용을 하지만 상경계나 인문계 학생들이 갈만한 지원 분야는 상시 채용을 하고 있다. 상시 채용은 자리가 날 때마다 채용을 하겠다는 의미기 때문에 인문계 대졸자들이 갈 자리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채용 현황을 보면 기업들이 지원 분야에 채용을 아끼고 있다. 인문계나 상경계는 전공이 무관한 영업직이 아니면 지원할만한 곳이 마땅히 없다”고 말했다.
◇창업에서도 소외되는 인문계
취업난을 넘어 창업에서도 ‘인구론’이 적용되고 있다. 그야말로 문과생 잔혹사라 불리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청년창업사관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한 지난 4년간 청년창업사관학교 선정 업체를 보면, 전체 904개 업체 중 기계재료·전기전자 등 순수 이공계열 비율이 73%(663개)에 달했다.
그나마 애플리케이션 아이디어를 갖고 뛰어든 인문계열 출신이 섞인 지식 서비스 분야는 17.2%(156개)에 불과했다.
이는 전문적인 기술이 부족한 인문계열의 학생들의 경우 아이디어만 갖고 승부를 봐야하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공계열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결과다.
한 창업지원기관 관계자는 “누구든 창업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개발 분야에 지원자가 몰리고 있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창업에 눈길이 간다”며 “개발단계부터 인문계 창업의 성공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쉽게 지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