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체제'를 위한 삼성의 움직임이 숨가쁘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에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같은 행보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26일 이사회에서 합병을 결의하고 오는 7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자로 합병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일모직이 1대 0.35의 비율로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확보가 관건으로 여겨졌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병은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 중 삼성생명(7.2%)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지분이다.
현재 총수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4%) 뿐이며, 자녀들의 지분은 없다. 하지만 합병 후에는 제일모직 지분을 통해 삼성물산의 지분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4%를 보유하고 있으며 합병 후에는 16.5%의 지분을 갖는다. 제일모직 지분 7.75%씩을 보유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은 합병 후 삼성물산 지분을 5.5% 확보한다. 이건희 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3.45%를 가지고 있으며 기존 삼성물산 지분 1.4%를 합치면 합병후 지분은 2.9%가 된다.
이에 따라 합병 전후 총수 일가의 지분은 42.19%에서 30.4%로 감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다.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법인의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한다. 삼성물산이 출자구조에서 핵심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덕에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이 커지는 셈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이 0.6%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이 보유한 전자 지분 4.1%를 합치면 영향력은 급격히 커진다.
여기에 이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생명 지분을 각각 2.18%, 4.68% 가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7.86%를 우회적으로 지배하는 셈이다.
합병으로 인해 그룹의 지배 구조도 단순해진다.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해소되고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변화된다.
합병법인과 재단이 그룹의 가장 중요한 비금융사인 삼성전자와 금융사인 삼성생명을 직접 보유함에 따라 향후 후속 개편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합병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전자와 금융을, 이부진 사장이 호텔과 레저를, 이서현 사장이 패션 부문을 맡는 후계구도가 확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주회사 시나리오도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홀딩스(투자회사)로 인적 분할한 뒤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방안, 삼성생명을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재원이 필요해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행 금융지주회사법·공정거래법상 금산을 아우르는 지주회사 전환은 불가능하다"며 "가능성이 있다면 금융지주회사 전환 또는 산업지주회사 전환인데 대주주일가의 상속세 재원확보와 지주회사의 자회사 최소지분확보 등과 맞물려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임애신 기자 vamo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