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약세와 달러 강세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 일본 정부의 경기 부양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 역시 아베노믹스의 부양책 시행에 따라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물가 상승률 목표치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여 전문가들은 일본 당국의 기존 부양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 봤다. 이에 따라 엔화의 가치가 추가적으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12년 만에 첫 125엔 돌파한 달러·엔 환율
지난 2일 달러·엔 환율은 달러당 125엔를 돌파했다. 12년래 처음이다.
엔화 가치는 2012년 일본은행(BOJ)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현재까지 달러 대비 30% 넘게 하락했다.
일본 정부의 부양책에 따라 꾸준히 엔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1분기 부진했던 미국경제가 2분기부터 회복되면서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 것이 달러·엔 환율 상승(엔화 약세)의 원인이었다.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예비치 0.2% 증가에서 0.7% 감소로 수정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폭설 등 날씨와 함께 수입 증가 등 일시적인 요인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날 발표된 5월 제조업 지표가 개선되면서 2분기 경제에 대한 낙관론에 힘이 실렸다. 결국 2분기 경제가 회복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달러 강세를 이끈 것이다.
아울러 일본 정부가 현재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기대감 역시 엔화 약세를 부추겼다.
일본 경제가 탄탄대로를 이어가면서 회복 기조가 가시화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계획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 부양 기조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지표들은 아직 명백한 회복 신호로 보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다. 수출, 기업 생산 면에서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디플레 우려는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정부 목표치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식료품과 에너지 등을 포함한 전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0.6% 올랐다. 예상치는 웃돌았지만 소비세 인상 1년 만에 0%대로 미끄러진 것이다.
지난 2012년 12월 일본 정부는 대규모 양적완화 시행을 결정하면서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제시했다.
케시 마쓰이 골드만삭스 일본 담당 수석 전략가는 “물가 측면에서는 일본 경제가 아직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재 일본은 내수 성장 경제로 지나가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토모 기노 시타 노무라증권 수석 전략가는 “일본 정부의 전망대로 물가가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목표치에서 먼 상황”이라며 “일본 정부는 현재 부양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베노믹스 바람타고 엔저 지속될 듯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엔화 약세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선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 경제 펀더멘털의 회복에 따라 금리 인상이 연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스미토모미쓰이은행은 보고서에서 엔화가 추가적인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달러 강세와 맞물려 2분기 내에 달러당 128엔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오는 5일(현지시간) 발표되는 미국 5월 고용지표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5월 비농업고용은 22만5000명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월 비농업고용은 22만3000건을 기록했다. 소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예상치에 부합하는 지 여부가 달러의 추가 강세를 결정지을 것이란 전망이다.
아울러 현재 일본 정부의 물가 수준이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추가적인 부양책도 시행될 가능성이 열려있다.
시라이 사유리 BOJ 심의의원은 “현재 완화 속도에 충실한다면 우리의 물가 목표치인 2.0%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시기는 2017년 3월 회계연도 말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시라이 의원은 “현재까지는 추가 부양책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현재 인플레이션 추세가 크게 약화된다면 통화 정책을 추가적으로 시행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4일 열린 BOJ 세미나 연설에서 “각국의 무분별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외환시장의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모든 국가의 통화정책은 어디까지나 물가 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현재 기조를 용인하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구로다 총재는 이어 달러·엔 환율 수준에 대한 논평은 삼갔으나 환율이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해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BOJ 세미나 연설을 진행 중이다. (사진=뉴시스)
어희재 기자 eyes4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