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을 '경제 문제'로만 봐 주세요"

입주기업들 스스로 '편집숍' 열며 활로 개척 나서
협동조합 '개성공단상회' 이종덕 부이사장 인터뷰

입력 : 2015-06-07 오전 10:10:40
“개성공단 입주가 결정됐을 때는 ‘로또 됐다’며 전직원 회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던 2008년 5월 무렵부터 찬바람이 불었다. 개성공단 진출은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지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자식들에게 뭔가 할 말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죽게 생겼으니까, 일단 살아야 하니까, 사명감이고 뭐고…”
 
개성공단 기업들이 만든 협동조합 ‘개성공단상회’의 이종덕 부이사장은 이 대목에서 살짝 목이 메는 듯 했다. 6개월 가동 중단 사태가 있던 2013년에 관해 물으니, 안 할 수 없는 얘기니까 빨리 하고 넘어가고 싶은 듯 "너무 큰 손해를 봤다”고만 말했다.
 
이 부이사장은 경기도 광명에 본사를 둔 속옷 제조업체 ‘영 이너폼’의 대표다. 2007년 개성공단 공장을 분양받을 당시 54명이던 직원 수는 현재 남·북을 합쳐 400여명으로 크게 늘었다. 매출도 당연히 커졌다. 그러나 공장 가동 첫해부터 8년 가까이 개성공단의 수난이 거듭되면서 “덩치만 커졌지 내실은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개성공단을 경제적인 시각으로만 봐줬으면 좋겠다. 일만 하게 해 주면 정말 잘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개성공단은 그 어느 곳보다 정치적 상징성이 높은 지역이 돼버렸다. 불안 요소가 남북 양쪽에서 다 온다. 우리는 너무 외롭다.”
 
그러나 힘들어 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냈다. 공단 생산품을 남측 소비자들에게 직접 파는 가게를 열어보자는 것이었다. 작년 말 몇몇 입주기업들이 출자금을 내는 협동조합 형태로 사업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지난 4월 하순 ‘개성공단상회’란 이름으로 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 현재 12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고, 1곳이 더 들어올 예정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라면 누구든 출자금만 내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성과가 좋으면 참여 기업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이사장을 지난 5일 만난 곳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개성공단상회 직영 1호점이다.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가 30m, 풍문여고 정문에 못 미쳐 있는 2층짜리 매장이다. 지난달 23일부터 1층 매장에서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2층 매장은 준비 중이다. 같은 날 서울 은평구와 경남 창원에서도 대리점이 문을 열었다. 정장, 셔츠, 청바지, 아웃도어, 속옷, 양말, 장갑 등 의류와 잡화를 주로 취급한다. 올 하반기부터 매장 수를 늘려 내년까지 30곳을 연다는 계획이다.
 
이 부이사장은 “부산과 김해 등에서 대리점을 해보겠다는 분들이 이미 나타났다”면서 “처음 오픈한 3곳이 어떤 성과를 내는지를 정확히 본 후에 판단하시라며 유보해 놓은 상태”라고 소개했다. 개성공단과 아무런 연이 없어도 대리점을 운영할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상회는 정식 오픈 행사를 아직 열지 못했다. 개성공단의 위태로운 처지를 보여주듯, 출범식은 무려 세 차례나 연기됐다. 처음 두 번의 연기는 개성공단 3월·4월 임금 갈등이 길어지면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날짜를 멀찌감치 띄어 개성공단 설립의 근거가 된 6·15 공동선언 15주년 기념일에 행사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메르스’라는 복병이 나타나는 바람에 일단 취소했다. 그러나 출범식을 몇 번 연기했다고 풀이 죽을 그들이 아니다. ‘메이드 인 개성공단’ 상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유명 브랜드 상품과 질은 같지만 반값이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은 한국에 남아 있는 섬유업체들 중 최고의 기술과 규모, 디자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 노동자들은 젊고 기술 흡수력은 아주 빠르다. 좋은 품질이 나올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입소문이 나고 있다. 며칠 전 근처 교회 집사님들 모임에서 물건을 잔뜩 사갔다.”
 
개성공단 업체들은 주로 대기업의 주문을 받아 상품을 제공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사업을 해왔다. 자체의 공동브랜드 상품을 내놓는 시도가 그간 몇 차례 있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개성공단상회가 여러 브랜드를 모아 파는 ‘편집숍’ 형태의 사업을 시작한 것은 또 하나의 시도다. 이 부이사장은 “재고 물건이 아니다. 개성공단상회 매장에서 팔기 위해 새로 만든 상품들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이종덕 개성공단상회 부이사장이 직영1호점에서 상품을 설명해주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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