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환자가 나타난 지난달 20일 이후 6월 7일 기점으로 국내 메르스 확진환자가 64명, 사망자 5명, 격리자 1800여명을 넘어섰지만 정부는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이번 ‘메르스 사태’ 대응과정이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부분이 다수 발견돼 국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만 있다. 세월호 침몰 당시와 같이 ‘컨트롤타워 부재’와 그에 따른 ‘초동대처 실패’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메르스 최초 발병자 이모씨는 지난달 11일 발열증세를 보였고, 9일 뒤인 20일 메르스 확정 판정을 받았다. 그 사이 병원 4곳을 전전했고 의료진이 “메르스가 의심된다”고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만약 메르스가 아니면 해당 병원이 책임져라’는 식으로 검사를 미뤄 메르스 확산방지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20일 메르스가 확인되자 당국은 질병관리본부에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설치해 확산저지에 나섰다. 21일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메르스의) 전염력은 대단히 낮다. 상당히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격리대상을 포함시켰다”고 자신했지만 2차 감염자가 속출했고 일주일만인 28일 복지부로 콘트롤타워는 옮겨졌다.
복지부에 콘트롤타워가 옮겨졌지만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던 3차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2일 “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격상할 필요가 없다”면서 메르스 관련 정보 대중공개를 한사코 반대했다. 국가재난사태 컨트롤타워를 담당하는 국민안전처 관계자도 “신종플루 같은 경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300만 명 정도 감염됐을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했다. 지금은 가동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정부 측의 한가한 상황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메르스를 최초로 언급한 것은 확진환자가 발생한지 12일 만인 6월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였다. 더구나 언론을 통해 이미 감염자가 18명으로 늘어난 것이 공개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5월 20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15명의 환자가 확인됐다”고 발언해 청와대가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박 대통령은 3일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하고, 5일에는 메르스 대책 최일선인 국립중앙의료원 국가지정 음압 격리병상을 전격 방문해 직접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메르스 정보 공개여부’를 두고 청와대와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충돌하고, ‘메르스 휴교’에 대해 복지부와 교육부가 각자 딴소리를 하는 등 혼란은 계속됐다.
메르스 사태로 박 대통령의 여론 지지율은 대폭 하락했다. 한국갤럽은 5일 이번 달 첫째 주(2~4일, 3일간) 박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지난주보다 6%포인트 하락한 34%를 기록했고 부정평가는 55%로 지난주에 비해 8%포인트나 상승했다고 밝혔다.(만 19세 이상 남녀 1005명 전화인터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한편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메르스 대응 모습에 지난 2003년 노무현 참여정부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대응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당시 이웃나라 중국에서 사스가 확산되자 참여정부는 국내에 확진 환자가 나오기도 전에 전국에 방역 강화지침을 내리고 총리실 산하에 종합상황실을 설치했다.
‘컨트롤타워’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관련 행정부처들이 힘을 모았고,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들의 협조도 부탁했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8400여명이 사스에 감염되고 810여명이 숨졌지만 국내에선 사망자 없이 단 3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데 그쳤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후 메르스 환자 국가지정 격리병상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대책 상황을 직접 점검했다. 사진/청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