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달러·엔 환율은 달러당 125엔대를 돌파했다. 연내 미국 기준금리 인상 전망으로 달러 강세가 진행되는 가운데 일본의 부양책 영향에 엔화는 역사적인 저점까지 떨어진 것이다. 달러·엔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각 국은 구두 개입에 나섰다.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흔들린 달러·엔 환율 추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환율 추이가 불편한 미국과 일본
지난 2월 달러·엔 환율은 120엔대를 돌파했으며 지난 8일에는 13년 만에 125엔을 뚫었다. 5일 미국 고용지표 호조로 기준금리 인상이 연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달러 강세를 이끌었다. 아울러 일본 경제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부양 기조가 유지되고 있어 엔화는 상대적으로 추가 약세를 이어간 것이다. 가파른 달러·엔 환율의 추이에 양국 관계자들은 직·간접적으로 경계감을 나타냈다.
10일(현지시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중위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엔저에 대한 우려감을 표명했다.
구로다 총재는 “실질 실효환율을 기준으로 엔화 가치는 이미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며 “추가적인 엔화 약세가 더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구로다 총재의 발언에 외환시장은 요동쳤다. 이날 달러·엔 환율은 122엔대까지 급락했다. 지난 3주간 가파르게 오르며 125엔대를 돌파한 상승 흐름에서 후퇴한 것이다.
마사후미 타카다 BNP파리바 SA 통화 감독은 “구로다의 발언이 시장을 놀라게 했다”며 “미국 지표 호조로 달러 매수세가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시기적절한 멘트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요지의 발언은 비단 구로다 총재뿐만이 아니다. 구로다 총재의 전 자문인 이토 다카토시 전 일본 재무부 차관보는 “실질 실효환율을 기준으로 엔화 가치가 지난 40여 년간 평균치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엔저를 경계했다. 지난 8일 G7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에 따라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미국 역시 달러의 차익 실현 욕구를 자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8일 일부 외신은 익명의 프랑스 관료 발언을 인용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7일 회담에서 강달러를 지적했다”고 밝혔다.
외신 보도 이후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관련 발언이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이날 달러화는 주요 통화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
◇구두 개입 불구 달러·엔 전망 엇갈려
가파르게 오르던 달러·엔 환율이 일시적으로 122엔대까지 후퇴하면서 향후 전망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양국의 구두 개입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달러·엔 환율의 상승 흐름은 지속될 전망이다. 엔화의 추가 약세를 압박하는 요인들이 여전히 잔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함께 개선되고 있지만 미국의 실질-잠재성장률의 차이가 일본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어 달러 강세가 추가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보리스 쉬로스베르그 BK자산매니지먼트 외환 전략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실제로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을 경우에만 달러 랠리를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수지 측면에서도 미국과 유로존의 경상수지가 개선되고 있어 하반기 엔화의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의견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달러·엔 환율의 추가적인 상승은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즉 달러·엔 환율이 120엔대 초반에서 등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우치다 미노리 도쿄 미쓰비씨 은행 리서치 대표는 “일본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 달러화가 고평가 됐다는 우려가 있다”며 “미국-일본 간 금리 차이를 고려해볼 때 125엔 이상에서의 달러 매수는 불가능하다는 투자적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125엔대에서 당국의 개입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통화 정책 관련자들의 추가 개입 가능성도 언급된다.
타나제 준야 JP모건체이스 은행 수석 외환 전략가는 “미국, 일본의 금융 당국은 경제적·정치적 이유로 달러·엔 환율의 추가적인 상승 흐름을 원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달러·엔 환율 향방에 대해 오는 18일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인상 시기에 대한 힌트와 일본 정부의 소비세 인상 시기에 대한 이슈에 주목할 것을 조언했다.
달러·엔 환율이 122엔대로 추락한 가운데 외환은행 직원이 달러화를 세고 있다. (사진=뉴시스)
어희재 기자 eyes4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