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경쟁력과 자원수급 안정 원한다면…답은 러시아

러시아 문제 전문가들 "한·러 협력으로 신냉전 구도도 깰 수 있어"
최악의 미·러관계 속 한국이 갈 길은 어디에

입력 : 2015-06-14 오전 9:59:31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국과 러시아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대 러시아 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경제연구원 공동주최로 9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러 수교 25주년 국제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미·러 갈등으로 한국의 운신 폭은 좁아졌지만, 미국에 한·러 협력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러시아 문제 전문가인 김석환 한국유라시아연구소장은 우선 러시아의 ‘가치’를 강조했다. 김 소장은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자원의 안정적인 수급과 새로운 시장, 물류 경쟁력 등이 필요하다며 그러한 조건을 갖춘 러시아 및 유라시아 지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특히 “글로벌 물류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북극해 항로의 상업적 이용이 점점 가시화하고 북극권의 자원 개발이 점점 더 활성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과 한반도를 잇는 북극 항로를 통한 화물 운송은 남방 항로 운송 시간의 70%에 불과해 ‘물류 혁명’을 가져오는 루트로 평가된다.
 
정부도 러시아·유라시아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유라시아 국제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공식 주창했다. 유라시아 역내 국가간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만들고, 유라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북한의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발표 한 달 뒤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의 발목을 잡았다. ‘미국 진영’과 ‘러시아 진영’의 접점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에서 내전이 발발하고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어 미·러 갈등이 냉전 해체 후 최고조에 이르자 미국 진영에 속한 한국이 러시아와 적극 협력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 러시아 제재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4년 3월 외교부는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제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장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러한 성명이 달가울 리 없으며, 한국도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를 무시하고 러시아와의 전면적인 경제협력 확대를 추진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석환 소장은 “미국으로부터 한국의 대러 제재 동참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력이 이어지고 있어 대규모 신규 거래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제성훈 팀장은 또 “(미·러 갈등에 따른) 북·중·러 관계의 강화와 미일동맹 강화로 동북아의 지정학적 대립 구도가 심화되어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이 저해”된 점도 한국이 처한 어려움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협력이 절실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제 팀장은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러시아와의 협력을 확대해야만 동북아에서 북·중·러 협력 강화와 미일동맹 강화가 야기할 수 있는 전략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으며, 러시아 극동을 포함한 동북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에)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와의 협력에 기초한 북한의 유라시아 국제협력 참여가 궁극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미국이 한국에 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라고 요구할 경우에는 “교역과 투자 규모를 볼 때 제재 효과가 미미하고 오히려 한국 기업의 대러 비즈니스 활동만 제한한다는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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