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장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요국가 별 장기 시계열자료를 이용해 부와 소득의 불평등화 경향을 분석, 제시했다.
피케티는 저서를 통해 자본수익률(profit rate of capital)이 경제성장률(rate of economic growth)보다 높아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주요 선진국들이 ‘세습자본주의화’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과연 이 같은 이론과 경향은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가? 그렇다면 어떤 처방이 필요한가? 이에 대한 연구논문이 최근 제시돼 관심이 모인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표학길 박사는 한국경제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한국경제포럼’ 최근호에 ‘한국의 통계자료를 이용한 피케티 가설의 검증’이란 논문을 게재하고, 소득불평등 심화로 세습자본주의화 하는 이른바 ‘피게티 가설’은 “한국경제에도 적용된다”면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 악화에 대비해 피케티가 제안하는 소득세나 상속세의 누진율 강화, 부유세 도입 등을 통해 소득불평등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표 교수는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론과 관련, “성장의 원천인 생산성증대를 등한히 하면서 소득재분배에만 집착할 경우 경제발전은 자기파멸적(self-defeating)인 길로 접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정치발전과 사회통합을 통해 사회적 자본을 축적시켜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우울한 자본주의의 종착역에의 도달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정책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논문에서 표 교수는 피케티가 제기한 부와 소득의 불평등화 심화의 문제는 성장의 원천을 어디에서 찾느냐 하는데 귀결된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 2008)는 전세계적인 저성장의 원인을 금융의 국제화 시대에 발생한 임금격차에 따른 소득 불평등화의 심화로 보고, 임금주도 성장(wage-led growth)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반영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최저임금인상,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및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을 도입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임금상승률이 내수경기회복의 애로요인으로 볼 수 있으므로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 가계소득증가, 소비증가, 내수활성화로 연결되는 선순환구조를 이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또는 임금주도성장이 모든 나라에 적용될 수는 없다. 중국, 인도, 브라질과 일본, 미국과 같이 내수규모가 큰 나라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해외수요의 격감에 따른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한국·대만과 같이 수출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50%가 훨씬 넘어가는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내수위주의 소득주도성장은 원천적인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과 같이 후기산업화에 성공한 신생경제국에게 시사해주는 피케티 가설의 정책적 함의는 성장우선이냐 분배우선이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나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를 어떻게 인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제로섬게임(zero-sum game)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성장의 원천인 생산성증대를 등한히 하면서 소득재분배에만 집착하는 소득주도성장론에만 의존할 경우 경제발전은 자기파멸적(self-defeating)인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정치발전과 사회통합을 통해 사회적 자본을 더욱 성숙하게 축적시키는 길만이 맑스나 피케티가 상정한 우울한 자본주의의 종착역에의 도달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정책방향임을 알아야 한다.
국가미래연구원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가 지난해 9월 20일 오후 내한해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