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이하 미래연)이 5월 28일 발표한 ‘한국 상장기업의 성장성 및 수익성 분석’ 보고서(연구자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체력(매출액)과 기력(수익성)이 급격히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업을 제외한 국내 상장기업들의 매출액 증가율과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모두 떨어졌고 특히 매출액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국내 산업의 주축인 제조업의 실적악화가 주요인으로 김영욱 자문위원은 “국내 기업들의 매출액 감소는 한국 기업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국 제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0.7%로 급락했지만 그래도 플러스 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제조업은 2.21%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 상장 제조기업은 오히려 매출액이 급격히 감소했고(성장률 –3.6%) 전체 상장기업의 매출액도 2013년에 비해 줄어들었다.(성장률 –1.6%)
매출액 감소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매출액 증가율이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7.5%에서 2012년 4.5%, 2013년 0.8%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제조업도 2011년 5.6%에서 3.6%, 1.1%로 매년 뒷걸음질 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체력 악화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2010년 7.3%에서 2012년 5.2%, 2014년 5%로 하락했다. 역시 제조업 분야의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인데,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8.1%에서 2012년 6.4%, 2014년 5.5%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는 철강·화학 등의 소재, 조선·기계 등의 산업재, 반도체·디스플레이·컴퓨터 등의 정보기술(IT)업종의 부진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세계경기 회복세 부진과 주요 경쟁국인 일본의 회생으로 국내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부실업체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상장 제조업체의 이자보상배율은 4.29였다.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의 4배 이상이란 점에서 아직은 우려할 상황이 아니지만 이자보상배율이 매년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2010년 5.76에서 2011년 4.59, 2013년 4.62로 꾸준한 하락세다.
더 큰 문제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잠재적 부실업체 수가 지난해 세 기업 중 한 개꼴이었다는 점이다. 부실업체 비중도 2010년 21.1%에서 2012년 32.2%, 2014년 33.1%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12~2014년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을 기록한 기업도 여섯 곳 중 한 곳 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섯 기업 중 한 기업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한편 보고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 중에서도 한국 기업의 성적이 꼴찌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본 기업의 경영실적이 급격히 개선된 것이 눈에 띈다. 2012년까지는 한국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이 중국 다음이었지만 2013년에는 일본이 1위로 올라섰고 한국 기업이 최하위로 떨어졌다. 또 중국기업은 2013년부터 상승세로 전환했지만 한국기업은 2013년에도 여전히 부진했다.
이는 수익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2012년까지는 한국 기업보다 나빴지만 2013년에는 5.8%로 한국(5.2%)에 역전했다. 2013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양적완화와 엔저현상을 시작한 아베노믹스가 일본 기업의 회생을 가져오고 있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이 보고서를 주제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김광두 미래연 원장은 “구조조정이 지연될수록 국가경제에 해악을 미친다”며 “서둘러 좀비기업을 정리한 후 게임과 핀테크 등 유망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식 연세대 겸임교수도 “전세계적인 과잉 공급으로 한국 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내수진작 등의 미봉책보다는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성장 잠재력의 확충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때 연매출 150억원대에 육박하던 식품업체가 장기불황을 넘지 못하고 결국 폐업을 선택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