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해외영업팀에 근무하는 이 모 씨는 최근 원화를 엔화로 바꿔 저축하는 엔화 예금에 가입했다. 그는 “달러-엔이 120엔 후반을 넘어섰다는 뉴스를 접한 뒤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향후 엔화 강세에 미리 베팅하고 있다는 지인 얘기를 듣고 가입했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엔저로 수출 기업들은 울상이지만 환차익을 노린 틈새 재테크 족들은 방향이 정해졌다고 보고 선 투자에 나서고 있다.
환차익 노린 틈새 재테크…엔저에 자산비중 '확대'
저금리 시대에 갈 곳 잃은 자금들이 환차익을 주목하고 외화 자산을 눈여겨보고 있다. 유학생이나 일부 투자자의 전유물이었으나 이제는 직장인부터 주부까지 참여하는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말 한국은행의 외화 예금 잔액은 647억5000만달러로 전월대비 33% 감소했다. 이 가운데 달러화예금은 21%이상 감소했고 위안화예금도 7.5% 줄었다.
반면, 엔저로 쪼그라들었던 엔화예금은 0.8% 감소하는 데 그쳤다. 지난 4월에도 엔화예금은 1000만달러 급증했다. 이를 두로 일부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가 조만간 반등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특히, 이달 초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총재의 엔저 경계 발언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10일 BOJ 총재는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 전체에 긍정적이라면서도 가파른 환율 상승(엔화 약세)이 더 도움되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국내운용사 한 임원은 "단기 변동성은 있겠지만, 엔화가 추가로 하락해도 그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 애매한 위치의 달러보다 방향(강세)이 뚜렷한 엔화에 베팅하는 이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FX마진거래, 고위험…외화연계예금(ELD) 안정·수익 '굿'
전문가들도 엔화 약세가 추가로 진행되더라도 그 수준은 3~5%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엔화 자산 비중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다. 장화탁 동부증권 자산배분 팀장은 "실질실효환율 측면에서 일본과 한국의 통화 가치가 2007년 수준까지 벌어졌음에 주목해야 한다."며 "현재 원/100엔은 900원 수준이지만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가치는 2007년 800원 수준으로 원화 대비 엔화는 극도로 저평가, 엔화 대비 원화는 극도로 고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엔화 자산 비중을 늘릴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위험이 크지만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방법으로는 외환차익(Foreign Exchange)거래가 있다. FX마진 거래는 증권사나 선물 회사에서 전용 계좌를 개설한 뒤 투자자들이 증거금을 내고 특정 해외 통화를 동시에 사고파는 외환 선물거래로 투자금의 10배까지 차입할 수 있고 두 나라 통화를 동시에 거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적합하다.
위험을 싫어하는 안정적 성향의 투자자라면 엔화 예금도 추천하는 방법이다. 원화를 엔화로 바꿔 외화 예금에 가입시키고 만기 때 다시 엔화를 원화로 바꿔 통화 간 환율 차이만큼 추가 이득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금리 자체는 연 1% 내외로 매우 낮지만, 환차익만 놓고 본다면 매력적이다. 은행에는 엔화 환율 연계 예금(ELD)이 있는데 원금은 보장하면서 엔화 환율에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단, 시중은행에서 특판 상품으로 한시적으로 내놓는 경우가 많아 타이밍을 잘 노려야 한다.
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나 부동산 리츠 펀드는 예금과 마진 거래 사이의 위험과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품들이다. 김종빈 삼성증권 반포 지점 PB팀장은 "경제 상황과 시장 흐름을 고려할 때 현재 원-엔 환율 차이는 과한 측면이 있다"며 "외환 투자는 위험이 따르는 만큼 펀드로 접근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일본 증시가 닛케이225지수를 중심으로 연초 이후 15%가량 올랐고 대형주가 상승을 주도했다며 앞으로는 중·소형주 또는 공모주 시장에 돈이 몰릴 것으로 기대된다는 조언이다.
외환 투자 고위험..반드시 여윳돈으로 투자
그러나 외환시장은 변수가 가장 많은 투자처이고 예상과 달리 환율이 움직이면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하반기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선다 해도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흑자로 원화 값이 오를 수도 있고 엔화도 예상만큼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해외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경우 이에 대비해 환 헤지가 가능하다. 예상과 달리 엔화가 하락할 때 환차손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에 해당한다. 단, 엔화 강세에 베팅하고 투자하는 만큼 위험은 크지만,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헤지를 않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이관석 신한은행 자산관리솔루션팀장은 "원화와 엔화 간 환율 차가 벌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외환시장은 변수가 무수히 많은 만큼 뚜렷한 방향이 정해진 뒤 선택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