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메르스 사태, '다음'을 준비할 때다

입력 : 2015-06-18 오전 11:04:40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2015년, 메르스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한 달 전 “첫 메르스 감염환자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전해졌을 때, 이후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일을 상상했던 이는 없었을 것이다. 의료 선진국을 자처했던 우리나라에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렇게까지 방역망이 뚫리고 전 국민이 공포에 떠는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첫째, 정부의 준비가 없었다. 2002년 중국에서 사스가 발생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창궐할 때 우리 정부는 사스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했다.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 대다수 의사들조차 메르스가 뭔지 인터넷을 검색할 정도였다. 정부는 위험한 신종 전염병에 대한 경계경보를 울리지 않았다.
 
둘째, 정부의 태도는 안이함 그 자체였다. 정부는 첫 메르스 감염환자가 발생한 다음날 체육대회를 가졌다. 비상사태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격리조치도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지기 전 평택성모병원에서 같은 병실을 사용했던 환자에 국한했다. 제대로 된 역학조사가 이뤄진 것은 평택성모병원에서 집중적으로 감염자가 쏟아져 나온 이후였다.
 
셋째, 전문가가 없었다. 정부는 메르스 감염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우왕좌왕 해댔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금 전문가이며, 차관은 복지를 전공했으며, 보건의료정책관도 행정고시 출신이다. 보건 분야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 정작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의료 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이 안 됐다. 민간 전문가들이 조언을 해도 이조차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자가 속출할 때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사태를 키우게 된 이유다.
 
넷째, 리더가 없었다. 정부의 수많은 실책 중 가장 뼈아팠던 것은 뒤늦은 정보 공개다. 정보 공개가 미뤄지는 사이 메르스는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WHO 조사단도 정부가 정보 공개를 늦춘 것이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왜 그랬을까. 결정할 수 있는 리더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누구도 기꺼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않으니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위기 국면에 소신 있는 리더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비극이다.
 
다섯째, 구조적 문제다. 메르스가 방역망을 뚫고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메르스 의심환자 진료를 기피하는 등 혼란이 지속됐다. 정부는 메르스 진료를 민간 의료기관에 떠넘길 게 아니라 공공 의료기관을 메르스 진료병원으로 지정해 혼란을 막았어야 했다. 메르스 사태 발생 즉시 전국의 일선 보건소로 하여금 진료를 중단케 하고 모든 인력과 자원을 방역에 투입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 달이 지나서야 진료를 ‘최소화’하고 메르스 방역에 힘써줄 것을 보건소에 요청했다. 이처럼 보건소에 대해 복지부가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공 의료기관들이 복지부가 아닌 안전행정부 소속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휘를 받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메르스 재앙이 예고된 사태임을 잘 알고 있다. 세월호와 다르지 않다. 의사협회는 보건이 사라진 보건복지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보건부의 독립을 줄기차게 외쳐왔다. 보건의료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다. 따라서 보건의료정책을 맡는 수장은 이 분야 전문가여야 한다.
 
법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은 전문가를 지명하면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금 전문가에게 맡겨도 된다는 발상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보건을 경시하는 것은 청와대에 보건담당 수석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복지부 차관을 지낸 고용복지수석이 있지만, 그 역시 사회복지학 박사의 행정 전문가다.
 
이런 구조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메르스 방역이 뚫린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금은 무너진 것을 복구할 때가 아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할 때다. 신속히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메르스보다 전염력이 강하고, 치명적인 질병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겪는 메르스의 고통을 강력한 예방주사로 만들어야 한다. 교훈을 얻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더 큰 국가적 재앙을 맞을 뿐이다. 그 비극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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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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