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구나 하나쯤은 가입한 금융상품이 펀드다. 그러나 막상 어떤 펀드에 가입했는지 누가 물어보면 선뜻 답을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상품 이름은 왜 그렇게 길고 어려운지, 수수께끼가 따로 없다. 그러나 펀드명에 숨겨진 코드의 비밀만 알고나면 어려울 게 없다. 내 펀드의 투자 성격과 수수료, 그 외의 정보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펀드명, 정해진 규칙에 따라 만들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서 판매된 펀드의 수는 무려 1만1997개에 달한다. 그 많은 펀드는 각각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는데 펀드명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금융투자협회의 ‘간접투자상품 및 판매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펀드 이름에는 운용사 명칭을 시작으로 운용 특성, 투자 대상 등을 순서대로 넣어 만들도록 돼 있다.
이 공식을 잘 기억해 두고 사례별로 적용해 보면 쉽다. 우선 안정적인 성과로 인기가 많은 펀드인 '한국밸류 10년투자2 (채권혼합)C'에 적용해 보자. 이 펀드명을 ①한국밸류 ②10년투자 ③2 ④(채권 혼합) ⑤C 등으로 나눠서 살펴보면, ①은 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밸류자산의 이름이다. ②는 10년을 바라보고 중장기 기업에 투자한다는 운용 전략을 드러내는 마케팅 표현이며 ③은 두 번째로 만들어진 펀드라는 뜻이다. ④는 주식에 투자되는 비중이 50%이하이며 나머지는 채권 등 안전 자산에 투자한다는 뜻이다. 보통 ④자리에 (주식)이 있으면 60% 이상인 주식형 펀드임을 의미하며, (주식혼합)이 들어가면 주식과 채권을 함께 투자하되 주식 비중이 50%이상인 경우에 해당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⑤의 알파벳은 수수료를 의미하는데 A는 일정 비율을 판매 수수료로 미리 떼는 선취 수수료 펀드다. B는 선취 수수료는 없지만 정해진 기간 내에 환매하면 높은 판매 수수료가 부과되는 후취수수료 펀드다. C는 선취나 후취 수수료가 모두 없는 대신 투자기간 동안 일정 부분의 수수료를 내는 방식이며 기간이 지날수록 수수료는 좀 더 저렴해진다. D는 선취와 후취 수수료를 다 내는 유형이다
이제는 조금 더 긴 '신영연금배당증권(자)투자신탁C'을 통해 복습해 보자. 이 상품은 ①신영자산운용에서 ②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투자자를 위해 만든 상품이며, ③투자전략은 일정 부분을 배당을 주는 기업에 투자한다. ④같은 유형으로 먼저 만들어진 펀드(모)가 있는데 이와 같은 유형의 '자'펀드이며 ⑤C는 투자 기간 일정액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렇게 펀드 명칭을 만드는 규칙을 이해하면 투자성격이나 가입방법 또는 수수료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펀드 이름도 유행탄다
그런데 펀드 이름도 유행을 탄다. 시장 분위기가 달라지거나 투자전략의 변화가 있을 때 분위기를 반영하는 셈이다. 처음 펀드 시장이 개막할 무렵에는 랜드마크운용의 ‘랜드 마크 1억 만들기펀드’와 미래에셋운용의 3억 만들기펀드' 등 목돈 만들기 상품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투자자에게 오해의 소지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또 '세이브 플러스' 상품도 투자 원금이 보호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된 바 있다.
운용사에서 한 펀드가 히트를 치면 같은 명칭으로 시리즈로 내놓는 게 대세인 적도 있었다. 한국 운용의 '네비게이터주식펀드'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지난 2007년 설정된 이후 안정적인 성과를 보인 덕에 '한국투자네비게이터아이사랑적립식 1(주식)', '한국투자네비게이터중국본토자UH(주식)(A)'등 많은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복잡한 수식어를 생략하고 운용 철학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펀드 이름이 인기다. '부자아빠'나 '착한기업' '광개토대왕' '인사이트' 와 같은 수식어는 찾아보기 어렵고 포트폴리오 전략을 드러내는 '롱숏' '밸류' '스몰캡' 짧고 간단한 표현을 많이 쓰고 있는 추세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길고 어려운 수식어를 붙이면 오히려 고객이 외우기 어렵고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며 "소비자의 금융지식도 해박해졌기 때문에 운용전략을 보여주는 직관적 표현이 오히려 관심을 끄는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펀드 이름을 통해 차별화된 운용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현대인베스트먼트의 로우프라이스주식펀드나 현대강소기업주식펀드, 동양중소형고배당주펀드도 운용스타일을 명확하게 제시한 상품이다. 이 밖에 롱숏과 포커스, 가치, 밸류도 운용전략을 보여주는 명칭이다. 다만,유행을 타는 만큼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펀드가 난립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연초 신한 BNPP 아시아롱숏'펀드에 한국운용에서도 ‘삼성 아시아 롱숏 펀드’와 '한국투자 아시아 포커스 롱숏 펀드'가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펀드 명칭을 통해 상품의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는 있지만 포트폴리오나 운용 전략까지 알 수는 없다"며 "투자자 스스로 설명서나 수익률을 체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