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간성 회복이 곧 정의다

입력 : 2015-06-24 오전 6:00:00
최강욱 변호사
농경시대도 아닌데 역병과 가뭄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수 천년 전 수메르 신화에서도 가뭄과 역병은 하늘의 분노였다. 그러니 예부터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린다 했던 ‘왕’들은 그 하늘이 왕을 버렸다는 흉흉한 민심을 달래려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를 불안케 하는 메르스와 가뭄은 옛 농경사회와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그래서 더 불안하다. 과거의 가뭄과 역병이 가장 심각한 자연적, 사회적 재난이었다면 오늘의 가뭄과 역병은 인간의 탐욕과 무능이 불러온 인위적 재난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시민들은 ‘비밀’과 ‘연출’, ‘유치함’과 ‘무능’으로 일관하는 정부를 견뎌내야 했다. 피해자의 숫자도, 병원의 이름도 틀렸지만 ‘유체이탈’성 발언은 지속되었다. 사태가 번져가는 와중에도 상대를 겨냥하는 '정치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하물며 억지 연출이 분명한 대통령의 사진들과, 마스크가 필요 없다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마스크를 철통같이 착용한 모습은 실소를 넘어 분노를 불렀다. 결국 이웃이 실종되고 정부의 신뢰가 무너지며 ’아몰랑‘이란 유행어가 널리 퍼져 나갔다.
 
다행히 미국 방문은 취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살아있는 탄저균을 택배로 배달하게 한 미국의 행태에 대한 대응은 없었다. 그 심각성과 위험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어떤 이의 말대로 “흔한 중동 독감”이거나 “일개 전염병”에 비할 바가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하물며 미군은 예전부터 탄저균 백신까지 맞고 있었다는데 우리는 관련 정보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공유하지 못한 것은 물론, 주권적 차원에서 제대로 된 확인과 사과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지도 못한 것이다.
 
희귀한 두드러기로 매우 희귀하게 병역을 면제 받았던 장관은, 변호사 시절 했던 참으로 희귀한 '사면 관련 자문‘ 사실이 들통났어도 메르스 덕에 일약 총리가 되었다는 ‘메부지리’의 실례로 회자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대통령께서 국정의 모든 일에 다 개입하실 수는 없다”면서, “독감 걸렸다고 정보 공개하진 않는다”는 국회 답변으로 그 충성심을 과시하는 뚝심을 보여줬다. 소방호스로 쏘아댄 물이 모를 상하게 할 뿐 가뭄을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대책 없는 맹목적 충성심이 무너진 권위를 회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듯, 최근 벌어진 ‘희귀한’ 리더십의 참상과 ‘희귀한’ 비밀주의 및 ‘희귀한’ 우왕좌왕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도 매우 차가웠다. 첫 환자가 발생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외국인이 들어오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었고 한국인은 외국에서 꺼리는 사람이 되었다. ‘괴담 유포’를 엄벌하겠다면서도 괴담이 창궐할 조건을 양산한 정부는 국민들을 전염병의 공포로부터 구출하는데 실패하고 어서 시간이 흘러 진정되기만 기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공주님’을 변함없이 떠받들던 ‘콘크리트 지지층’조차 서서히 무너져 간다. ”놀러가다 당한 교통사고에 대통령이 무슨 책임이 있냐“고 외치던 자들은 ”한낱 감기에 유난들 떨지 말고 손이나 잘 씻으라, 본래 제 목숨은 제가 지키는 것“이라며 본색을 바꾸지 않았지만, 민심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원망을 거두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메르스는 “제2의 세월호”가 되었고, 세월호 유족들은 “정부가 우리를 메르스 추급하고 있다”며 지금도 아프게 외치고 있다. 병자와 약자를 돌보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정부를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이 시민들의 공포를 키우고 있다면 지나칠까. 하지만 어떻게든 나와 내 가족만을 지키자는 이기적 몸부림이 그 답이 될 수는 없다.
 
크리스토퍼 보엠은 '도덕의 기원(Moral Origins)'이라는 책에서 “정의는 우리의 본성에 새겨져 있다”고 밝혔다. 인류는 유인원 사회와 같이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수직 계층사회로부터 보다 평등한 사회로의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모든 성공적 수렵채집 사회는 과도한 이기주의와 족벌주의, 편파주의를 금지하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모든 수렵채집 사회에는 불공정과 독재에 저항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연구 결과였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는 정의를 “제우스의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했다. 분명 정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본성이다.
 
그러니 사라진 정의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살려내야 한다. 힘이 곧 정의가 되는 것은 유인원의 사회라 하지 않던가. 정의를 세워 함께 살자. 믿고 의지할 것은 힘이 아닌 정의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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