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대형 IT기업, 정부기관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얼굴인식 기술에 대한 규제의 틀을 마련코자 한다. 이를 위해 작년 2월부터 12차례의 공청회를 개최했지만 프라이버시 전문가 집단의 거센 반발로 법안 마련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놓여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프라이버시 전문가들은 미국 상무부 산하 통신정보관리청(NTIA)이 주관하는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얼굴인식기술에 대한 규제 방안을 마련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들은 NTIA에 보내는 서한을 통해 "정부의 방침에서 개인정보나 사생활 보호의 충분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불참 이유를 밝혔다. 얼굴인식과 같이 개인의 신상정보와 밀접한 기술은 당사자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사용돼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논의로 봐서는 이 같은 기본 원칙이 관철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다.
◇미국 정부의 얼굴인식기술 규제 도입이 전문가 집단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국제보안컨퍼스에서 한 참관객이 얼굴인식 시스템을 이용해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신화)
알바로 베도야 조지타운대학교 프라이버시법센터 이사는 "얼굴인식 기술을 활용하기에 앞서 소비자들에게 동의를 받게 만들더라도 절차상의 문제로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 곳은 사실상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스틴 브룩맨 민주주의와기술센터(CDT) 소비자 프라이버시 프로젝트 책임자도 "공공장소에 카메라를 설치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동의를 받을 기업이 어디에 있겠느냐"며 "이는 현실성이 매우 낮은 방안"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기업 뿐 아니라 정부의 행태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2009년 이후 사생활권의 확장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프 체스터 디지털민주주의센터(DDC) 이사는 "백악관에는 페이스북이나 구글같은 IT기업 출신들이 즐비하다"며 "이 분야가 미국 경제의 핵심이라고 여기고 있는 만큼 선거에 데이터마이닝 기술을 적용하는 것과 같이 사생활 보호와는 반대되는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존 모리스 NTIA 인터넷정책 책임자는 "공청회는 공공의 관심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소비자와 기업 모두 법안이 추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현시점에서 논의를 중단하는 것은 목표를 명확히하자는 당초 목적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NTIA의 규제 방안은 백악관의 '포괄적 소비자 프라이버시법' 초안을 근간으로 한다. 당초에는 모바일 앱 데이터 수집 등을 대상으로 했지만 얼굴인식기술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