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진욱 기자] 일본 자동차업계가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다.
현지 언론들이 ‘일본 자동차업계의 붕괴’라고 말할 정도다.
3월 마감된 2008회계연도 연결 결산에 따르면 일본 자동차업체 8개사 중 5개 회사가 적자로 전환했다.
5개 회사 중엔 지난해 최고이익을 기록했던 일본의 대표기업 도요타도 포함됐다.
13일 일본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8개사의 2008회계연도 매출액 합계액은 48조엔으로 1년 전에 비해 20% 가량 감소했고, 글로벌 생산량도 전년 대비 317만대가 감소한 1897만대를 기록했다.
일본 국내 자동차 생산도 7년 만에 처음으로 1000만대 밑돌았다.
지난해 일본 내 자동차 생산은 전년 대비 15.2% 감소한 999만3756대로 7년 만에 1000만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감소폭은 사상 최대였다.
◇도요타 市, 제2의 디트로이트 되나?
지난달 30일 뉴욕타임스(NYT)는 도요타의 본거지인 도요타 시(市)가 '제2의 디트로이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요타의 고공비행 속에 미국의 디트로이트처럼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해 온 도요타 시가 도요타의 위기와 함께 침체의 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외신이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면서까지 도요타의 앞날을 걱정할 정도로 도요타의 최근 실적은 심각할 정도다.
도요타는 2008회계연도에서 4370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해 1조 7200억엔의 이익을 올린 전년 대비 무려 2조1570억엔이나 후퇴했다.
연간 순매출 역시 26조 2900억엔에서 20조 5300억엔으로 감소했고 영업손실 규모는 4610억엔으로 나타났다.
2조 2700억엔의 영업이익을 보인 전년도와 비교하면 지난해 도요타가 얼마나 부진한 한 해를 보냈는지 알 수 있다.
4월 미국 판매량도 전년 동기 대비 41.9% 감소해 1년 만에 판매량 1위를 포드에게 내주는 등 세계 시장에서도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올해 전망 역시 좋지 않아 일각에선 도요타의 부진이 지난해보다 심화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도요타가 밝힌 올해 자동차 생산대수 목표치를 총 668만대로, 지난해 924만대보다 28%나 줄어들며 지난 7년간 최저치를 갈아치울 전망이다.
2009회계연도 전망에서도 5550억엔의 순손실과 8500억엔의 영업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매출 역시 16조500억엔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니시노하라 료코 도요타 대변인은 "올해 심각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해 도요타의 위기가 한동안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닛산, 10년 만에 적자 전환..곤 신화 무너지나?
지난 1999년 부도 위기에 몰렸던 닛산은 카를로스 곤에게 ‘위기의 닛산호’를 맡겼다.
곤은 99년 닛산의 최고운영책임자(COO)에서 2000년 6월 사장으로 승진,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2조1000억엔의 부채에 신음하고 있던 닛산을 흑자로 돌려놓으며 ‘구조조정의 마술사’란 명성을 얻었다.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한 곤의 취임으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구축되었고 지난 10년간 닛산은 눈부신 성과를 이뤄왔다.
닛산의 시장 자본은 90억에서 342억으로 4배 가량 증가했고, 1999년 10위에 머물렀던 닛산은 2007년에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자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행진은 글로벌 경기침체 앞에서 멈춰 섰다.
지난해 닛산은 곤이 취임한 10년 이래 처음으로 순손실을 기록했다.
닛산의 2008회계연도(2008.4~2009.3) 순손실은 2337억1000만엔으로 추락해 4822억6000만엔의 순이익을 기록한 전년과 대조를 보였다.
4분기(2009.1~2009.3) 순손실이 2769억엔에 이르고 영업손실은 2304억엔으로 나타나 2117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전년 동기에 비해 크게 악화됐으며 매출액은 41% 감소한 1조7510억엔을 기록하는 등 부진이 최근 더 심화되는 모습이다.
올 회계연도 전망도 좋지 않아 지난 2월, 주요 경영 목표인 연 수입 5% 성장을 오는 2012년까지 미룬 바 있는 곤은 내년 3월 마감되는 2009회계연도에서도 적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0회계연도가 끝나는 2011년 3월에는 닛산이 흑자로 돌아설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해 일각에서 일고 있는 ‘곤 신화 종식’을 경계하는 데 힘써야 했다.
◇위기에서 빛난 혼다..’나 홀로 역주’
도요타와 닛산의 위기와 달리 혼다는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혼다는 비록 전년 대비 70% 이상 감소했지만 2008회계연도에서 1370억엔의 순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업체 대부분이 올해 손실을 예상한 것과 달리 혼다는 400억엔의 흑자를 예상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런 혼다를 두고 ‘어둠 속에 있는 세계 자동차시장에 한 줄기 빛’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4분기(2009.1~3) 186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강력한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 상하이차의 이익이 50% 급감한 것을 고려할 때 비교적 위기에 여파를 잘 넘기고 있는 셈이다.
혼다가 올해 초 발표한 신차 ‘인사이트’ 역시 판매에서 호조를 보이며 최근 혼다의 상승세에 힘을 더하고 있다.
혼다의 신형 2세대 하이브리드 카 '인사이트'는 지난달에만 일본에서 총 1만481대가 팔리면서 하이브리드 카로는 처음으로 일본 월간 자동차판매 (660cc이하 경차제외) 1위를 기록했다.
지난 2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인사이트’는 지난달까지 총 석 달 동안 일본에서 총 1만9475대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혼다가 다른 업체에 비해 지금의 위기에 강한 면역력을 보이는 이유는 혼다가 소형차와 오토바이 사업에 집중한 결과란 분석이다.
지난 몇 년간 대형차에 대한 수요 증가로 미국의 ‘빅3’와 도요타, 닛산이 대형 픽업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을 늘려온 데 반대 소형차와 대형 오토바이에 집중해 온 혼다는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에 비교적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혼다는 비용절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국제자동차경주대회인 포뮬러 1(F1)에서 철수했고 고가의 스포츠카 NSX 사업을 접었다.
북미시장 자동차 판매량이 작년 150만대에서 올해 135만대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자 올해 여름, 북미 자동차공장의 가동을 13일간 중단할 계획도 세웠다.
곤도 고이치 혼다 수석부회장은 “미국 자동차시장이 바닥을 쳤다”면서도 “1980년대 초 이후 최저인 현 판매상황이 회복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적극적인 비용감소 등 모든 노력을 다 할 계획”이라고 말해 위기 속 여전한 긴장감을 드러냈다.
◇‘빅3’, 비용절감 외엔 해법 없다
전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 경제처럼 일본 자동차산업 역시 전후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양대 주력시장인 미국이 이번 위기의 진원지란 점에서 일본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일본 자동차산업을 이끄는 ‘빅3’가 향후 위기 속에서 얼만큼의 생존력을 보이느냐에 일본 자동차산업의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비용절감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위기는 글로벌 경기침체 하에서 급락한 수요 감소가 원인이고 이는 자동차업계에서 어쩔 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종신고용’의 원칙을 깨고 처음으로 비정규직 감원에 나선 도요타는 향후 추가적인 감원에 나서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닛산 역시 신차 생산을 줄이고 생산 및 조립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다는 자구책을 세운 상태여서 상황 진행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인력 감축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혼다 역시 기존의 비용절감 노력을 지속한다는 방침이어서 한동안 위기 속 ‘빅3의 낮은 포복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