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종화기자] 정부는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보다는 물가 하락속에 경기가 장기 침체하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더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 경제가 예상외로 심각해 경기가 바닥 탈출을 못한 채 지지부진한 횡보를 지속하는 `L자(字)형`으로 갈 위험이 크다는 진단이다.
정부의 분석은 최근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경기바닥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기획재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최근 인플레이션 논쟁의 핵심 및 시사점" 보고서를 최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 보고했다.
19일 토마토TV가 단독 입수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아직 매물로 나오지 않은 은행압류 주택 등 '그림자 재고(Shadow inventory)'가 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는 복병으로 숨어있다.
정부는 이 재고로 인해 미 주택가격이 추가 하락하고 자산가치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것으로 진단했다.
'그림자 재고'는 은행에 압류되었으나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거나 매매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주택을 의미한다.
실제 지난 1월과 4월 리얼티트랙(RealtyTrac)과 샌디에고 MDA데이타퀵(San Diego's MDA DataQuick)의 조사결과 미국 캘리포니아, 매릴랜드, 플로리다, 위스콘신주의 매매리스트에 포함된 압류주택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림자 재고는 압류된 주택물량이 많아서 거대물량이 시장에서 소화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발생하거나 압류주택의 판매에 따른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것을 지연하고, 대규모 매물이 일시에 나올 경우 가격하락의 속도를 조정하기 위해 주택판매를 연기하기 때문에도 발생한다.
보고서는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세계경기의 동반침체는 통상적인 경기침체보다 회복기간이 50%가량 장기화되는 것으로 추정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회원국의 올해 경제규모가 4.3% 축소되고, 세계무역 규모는 13% 이상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공황시 경기침체가 3~4년간 지속되었음을 감안할 경우 조기 경기회복은 시기상조"라며 "현 단계에서는 국제경기 후퇴가 장기적인 불황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확대된 재정·금융정책에 의한 국제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미국 등 자산가치 디플레가 심화된 국가의 경우 주택가격 등 자산가치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제반 안정화 정책의 효과가 지표로 가시화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경제지표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윤 장관이 공개석상에서 불확실한 대외상황을 언급하며 '신중론'을 펼쳐왔던 이유가 부분적으로 설명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경제회복이 가시화될 경우 양적완화 정책에 따라 급격한 물가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경기회복 과정에서 유동자금이 실물경제에 제대로 흘러가는지를 확인하고, 실물과 괴리된 자산인플레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경기회복, 금융위기 진정을 전제로 적절한 시점에서 과잉공급된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각국의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경기회복 이후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 고비용 경제구조에 진입한 중국경제로 인한 인플레이션 유발 가능성"을 경고하며 "국가 경쟁력 향상과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공급능력 증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실제 미국과 중국에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리라고 판단한다기보다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며 그 쪽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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