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재조명하고 남북 교류·협력과 통일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에 주목하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그같은 분석을 내놓으며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창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석 KDI 연구위원은 12일 발간된 <KDI북한경제리뷰> 7월호에서 ‘한반도 통일은 동북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논문을 통해 한반도가 통일됨에 따라 주변국들이 향유하게 될 경제적 혜택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는 주위에 잘사는 이웃이 있는 것이 못사는 이웃이 있는 것보다 유리한데, 한반도의 통일은 주위의 못사는 이웃(북한)을 급속하게 잘사는 이웃으로 바꾸는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이석 연구위원은 “한반도 통일로 동북아 국가들이 경험하게 될 가장 직접적인 경제적 변화 가운데 하나는 교역(량)의 변화일 것”이라며 과거 베트남과 동북아 국가들의 교역량 변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논문에 인용된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일본·중국·러시아·미국 5개국이 베트남과 교역한 총액은 2000년 100억달러에서 2013년 1500억달러로 13년 동안 15배가 늘었다. 이 연구위원은 베트남이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경제로 편입되면서 교역을 결정짓는 두 가지 요인인 거래비용과 베트남의 소득수준이 모두 긍정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며 “남북통일이 이뤄질 경우 이러한 변화는 북한 지역에서도 그대로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일본·중국·러시아·미국이 상대국의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대할 경우 그에 상응해 교역량을 크게 증대시켰다는 유엔의 다른 통계를 제시하며 “소득 수준의 상승 현상은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서 매우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연구위원은 통일로 인해 교역이 증대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투자 기회도 주변국들에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통일은 극단적인 인프라를 보유한 두 지역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며, 따라서 북한 지역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전면적인 인프라 구축을 필수로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위원은 특히 한국 GDP의 5%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되는 통일비용은 2020~2050년까지 3조 달러가 될 것이라고 계산하면서 “이러한 비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아마도 국제적인 경제협력을 토대로 해결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주변국들은 남북통일로 인해 한반도에서 새롭고 거대한 투자의 기회의 직면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한반도 통일이 주변국들에 소비시장과 노동시장, 물류시장, 자원시장이라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북한과 접한 지역이면서 각국에서 낙후된 지역인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의 연해주, 일본의 동해권 지역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도약의 계기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15일 ‘남북 경제교류의 뉴 패러다임과 경제교류 활성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해 보수 성향의 경제단체로서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을 드러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의 곽강수 글로벌연구센터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북한 지역이 ▲원가 경쟁력 ▲풍부함 지하자원 ▲지경학적 가치 측면에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가 경쟁력은 성인 인구의 100%가 문자 해독이 가능한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 적합한 인력이 풍부하며, 근로시간과 기업소득세·토지분양가 등에서 우위에 있다는 의미이다. 풍부한 지하자원에 대해서는 “부존자원 200여 종 중에 석탄과 철 등 140여종이 경제성 있는 광물”이라고 소개했고, 지경학적으로는 한반도-중국-러시아-몽골-일본을 잇는 동북아 경제권과 중앙아시아·유럽까지 연결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곽 센터장은 “2500만 북한 인구 중 40대 미만의 비중이 60% 이상으로 한반도 통일 후 노동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이 가능하다”며 “하락하는 남한 경제성장의 재도약 기회”라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영수 현대아산 관광경협본부장은 특히 “남북관계 개선이 경제교류 활성화의 전제조건이라고 하지만 역으로 경제교류가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 수도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전경련은 1995년 발표한 ‘남북경협 5대 원칙’을 20년 만에 수정한 ‘남북 경제교류 신(新) 5대 원칙’을 제시했다. 신 5대 원칙은 ① 남북 당국간 대화 진전과 교류의 조화 ②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경제교류 ③ 북한 경제개발은 북한이 주도 ④ 남북한 산업의 장점이 결합된 산업구조 구축 ⑤ 동북아경제권 형성을 위해 주변국의 참여와 지지 확보 등이다. 기존 원칙에 비해 북한의 주도성과 파트너십을 인정해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과거의 ‘지원과 압박’이라는 패러다임을 넘어서 남·북한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제 중심의 관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새 원칙을 채택한 배경에 대해 박 전무는 “중국이 G2로 부상했고 북·중·러 접경지역 개발이 이뤄지고 있으며 북한에도 시장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전경련은 청와대와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 관련 기관에 자신들의 방안을 제안해 놓은 상태라고 밝히기도 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러시아의 사진작가 알렉세이 게르만이 지난해 9~10월 북한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 중 평양 대동강변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교역이나 투자 등에서 주변국들에게 커다란 기회의 창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