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家)에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이 시작될 전망이다.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사실상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후계자로 지목된 듯했으나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힘을 실어주는 듯한 모습의 신격호 총괄회장의 돌발행동을 보이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27일 신격호 총괄회장은 신동주 전 부회장 등 일부 친족들과 함께 극비리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롯데홀딩스 이사 중 자신을 제외한 6명을 전원 해임했다. 해임된 인사 중에는 신동빈 회장도 포함됐다.
신동빈 회장은 하루 뒤인 28일 오전 긴급 이사회를 열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 결정에 대한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기존 임원들을 복귀시킨 후 신격호 대표이사 회장을 전격 해임했다. 이번 조치로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신격호 총괄회장에서 자신의 체제로 사실상 정리했다. 당장 급한 불을 끄면서 아예 자신이 스스로 후계자 자리에 오른 셈이다.
사실 업계는 지난 15일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후계자로 차남 신 회장을 지목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행으로 신동주 전 부회장을 도우면서 롯데의 후계자 구도는 다시 불투명해졌다.
경영승계 주도권은 신동빈 회장으로 기운 모양새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속내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신 회장이 아버지를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시키면서 부자간의 미묘한 갈등의 불씨가 생겨났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눈 밖에 나게 된다면 이후 경영권 승계는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자신의 보유 지분을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룹 장악을 위해선 안정적인 지분확보가 필수적인데,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일 롯데에서 소유하고 있는 지분율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은 신동빈 회장이 13.46%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있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 역시 13.45%를 보유하고 있어 두 형제간 지분 격차는 0.01%p에 불과하다. 롯데제과의 경우도 신동빈 회장이 5.34%, 신동주 전 부회장이 3.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아버지와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등 가족들을 동원한 신동주 전 부회장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어 이들의 지분이 신 전 부회장에게 넘어갈 경우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장악은 결코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일본 롯데가 분리되거나 일부 계열사를 나눠 지분정리를 하는 등의 타협을 통해 롯데그룹이 분리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한편 최근 이 같은 가족간의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자 신동빈 회장은 그룹 임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어수선한 그룹 내부 분위기 정리에 나섰다.
신동빈 회장은 메시지를 통해 "롯데가 오랫동안 지켜온 기업가치가 단순히 개인의 가족 문제에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라며 "흔들림 없이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왼쪽)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 (사진제공=롯데그룹)
이성수 기자 ohmytru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