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즉석 카메라를 왜 쓰는 것일까. 사진을 보관하기 힘들고 필름값도 부담스럽지 않나.
직접 사용해보기 전 즉석 카메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하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필름카메라가 단종되는 와중에도 즉석카메라는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뭔가 매력이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지난달 11일부터 18일까지 여름휴가 기간 동안 한국후지필름의 인스탁스 미니90을 사용해봤다.
인스탁스 미니90의 전면 모습. 사진/한국후지필름
디자인부터 독보적이다. 지금까지 인스탁스 제품이라고 하면 하얀색 또는 파스텔 계열에 캐릭터가 그려진, 약간은 장난감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인스탁스 미니90은 마치 필름카메라를 연상케하는 아날로그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가죽 느낌의 질감을 형상화해 고급스럽기도 하다.
유럽의 작은 나라인 라트비아에 도착한 다음날,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길 봐도 그림, 저길 봐도 그림일 정도로 풍경이 멋졌다. 미니90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셔터를 눌렀는데 이게 웬일. 사진이 찍히기는 하는데 결과물이 나오질 않는거다. '멘붕'이 왔다.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한국에 연락해서 해결책을 찾았다. 이런 경우 전원을 켠 상태에서 배터리를 분리한 후 5초 후에 다시 배터리를 장착하면 정상화된다. 한국후지필름에 따르면 이런 일이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 이 같은 조치를 취하고 난 후에는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스트랩을 이용해 크로스로 메고 다니면 걸리적거리는 느낌 없이 휴대할 수 있다. 사진/ 뉴스토마토
여행 할 때는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다닌다. 평소 운동 부족이라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데다 기본적으로 10킬로미터는 족히 걷기 때문이다. 이번에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개인적으로 사진은 찍고 싶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짐이 많고 손도 부족한 상황에서 미니90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은 휴대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크로스로 멜 수 있고 렌즈가 튀어 나오지 않아 휴대성이 좋았다.
혼자 여행을 가면 종종 셀피(셀프촬영)를 하게 된다. 요즘 나오는 카메라는 좀 더 나은 셀피를 위해 LCD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거나 광각렌즈를 적용해 넓은 화각을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로 너무 흔하게 촬영하는 셀피를 미니90으로도 촬영할 수 있을까?', '얼굴만 엄청 크게 나오는 거 아닐까?' 등 여러 의구심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미니90으로도 셀피가 무난하다. 카메라 전면에 부착된 거울을 통해 프레임에서 벗어났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셀피 시 타이머를 설정하면 별도로 셔터를 누를 필요가 없어 좀 더 안정적인 촬영이 가능하다.
미니90으로 셀피(셀프촬영) 촬영도 가능하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번에 각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도시명을 적은 글귀와 함께 셀피를 찍었다. 시굴다(Sigulda)라는 곳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결과물을 보고 나서야 스펠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u를 빼먹은 것이다. 글씨를 다시 써서 오류를 바로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다.
디카는 사진을 찍은 후 바로 결과물을 보고 마음에 안들면 들 때까지 찍을 수 있다. 하지만 필름카메라는 그게 안된다.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은 영원히 그 모습으로 기억된다. 이런 게 필름카메라만의 묘미 아니겠는가.
10년 전 찍은 즉석사진을 떠올려보면 플래시가 너무 밝은 탓에 얼굴이 하얗다 못해 코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플래시 발광이 자연스럽다. 지나치게 얼굴이 하얗게 나오는 일도 없고 밝은 플래시로 인해 배경이 날아가는 일도 없다.
더 자연스러운 인물 사진을 원하면 플래시 발광을 해제한 후 밝기 조절을 해주면 된다. 또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플래시 때문에 눈동자가 빨갛게 나오는데, 미니90에는 적목현상을 줄여주는 기능도 탑재돼 있어 유용하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 명암차가 많이 날 경우 어두운 부분은 거의 까맣게 나온다. 사진/ 뉴스토마토
미니90에는 사진의 밝기를 보통, 밝게, 더 밝게, 어둡게 등 총 네 단계로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다만 피사체가 멀리 있거나 풍경을 배경으로 찍을 때, 또 햇빛이 지나치게 강할 때는 밝기 조정을 해도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반대로 빛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두운 부문을 밝게 하기 위해 플래시를 적용했지만 명암차를 줄이지 못했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 빛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늘진 부분은 거의 검정에 가깝게 나오기 때문에 빛이 많은 곳을 선별해 찍는 게 좋다.
피사체가 가까이 있을 때는 밝게·보통·어둡게 모드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사진/ 뉴스토마토
풍경사진과 달리 피사체가 가까이 있는 사진의 경우 밝기모드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미니90은 이밖에 ▲셔터를 두 번 연속 눌러 한 장의 사진에 이미지를 겹쳐 나오게 할 수 있는 이중노출 ▲야간촬영이 용이한 벌브모드 ▲피사체의 떨림을 최소화해 빠른 움직임을 포착하는 키즈모드 ▲느린 셔터 속도로 플래시가 발광되면서 피사체의 배경을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파티모드 등도 사용 가능하다.
과거 인스탁스 제품은 접사 촬영을 하려면 돋보기 같은 렌즈를 씌워야 했다. 미니90은 접사모드를 기본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이 없다. 접사모드로 설정하면 렌즈가 앞으로 튀어 나온다. 뷰파인더를 통해서 보면 접사모드로 변경하면 위에서 렌즈가 내려오는 게 보인다.육안으로 보기에도 일반모드일 때보다 접사모드일 때 피사체가 더 커보인다. 접사는 0.3m~0.6m까지 지원된다.
폴라로이드 사진기에 대한 잘못된 상식 중 하나가 사진을 찍은 후 필름이 나오면 공기접촉을 늘이기 위해 흔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후지필름 관계자에 따르면 필름이 카메라에서 나오면 손으로 덮어주는 게 좋다고 한다.
처음에 하얀색이었다가 12초 정도 지나면 색이 올라오는데, 어느 정도 따뜻한 온기가 사진이 선명하게 변하는 시간을 단축시켜 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바지 뒷주머니를 애용했다. 손으로 필름을 덮고 있을 필요 없이 뒷주머니에 넣기만 하면 온기가 있고 공간이 좁아서 빠질 염려도 없다.
인스탁스 미니90으로 이용해 찍은 사진들. 사진/ 뉴스토마토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고 사진도 찍게 된다. 요즘에는 웬만하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카메라로 한번, 상대방 카메라로 한 번씩 찍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골이거나 어르신들을 만났을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같이 사진을 찍지만 그 순간의 기록은 나에게만 남는다.
이번에 인스탁스를 들고 여행을 가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이 같은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나 필름 카메라와 달리 인스탁스는 촬영과 동시에 사진이 나오기 때문에 선물로 건낼 수 있었다. 순박한 웃음을 지으면서 얼마나 좋아하던지. 사진을 집안 어딘가에 두고서 '아 이런 동양 여자애가 우리나라에 여행와서 나와 대화했었지'라고 기억할 것 아닌가.
배터리 용량도 만족스럽다. 출국 전 집에서 배터리를 충전한 후 40매를 찍었지만 10일이 지났을 때까지도 여전히 배터리가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 인스탁스는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새로 사서 끼우는 교환식이었다고 한다. 미니90은 충전식 배터리가 적용돼 경제적이고 편하다.
플레인, 에어메일, 스프라이트 등 촬영 분위기나 기분에 따라 필름을 선택할 수 있다. 사진/ 뉴스토마토
필름 디자인도 다양하다. 플레인, 핑크도트, 스프라이트, 헬로키티, 샤이니스타, 에어메일 등 촬영 분위기나 기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한국후지필름 공식 온라인 매장에서 미니필름 한 팩(10장)이 1만2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한 장당 1250원인 셈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사진 촬영 후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느끼던 설렘은 없어졌다. 셔터를 누른 후 1초도 안돼서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수 차례 다시 찍을 수도 있다.
인스탁스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했을 때의 두근거림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단 한장을 찍을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필름카메라는 필름이 있으면 같은 사진을 수십장, 수백장 뽑을 수 있지만 즉석카메라는 무조건 한 장 뿐이다. 사진 찍을 당시의 느낌이나 기억하고 싶은 장소까지 손글씨로 적을 수 있다. 세상에 딱 하나 뿐인 사진. 이 얼마나 멋진가.
임애신 기자 vamo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