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50년)산업화 요람 구로공단, 이제 글로벌 강소기업 메카로

입력 : 2015-08-05 오후 4:05:00
구로공단(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역사는 한국의 수출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 안에는 한창 학창시절을 보내야 할 나이에 가족을 먹여살려야 했던 나이어린 근로자들의 눈물과 땀도 스며있다.
 
지난 1963년, 한국경제인연합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발족한 수출산업촉진위원회는 정부에 서울 근교에 경공업 중심 수출산업지역 설정을 요구한다. 회원사들은 출자를 통해 주식회사 한국수출산업공단을 만들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단법인으로 형태를 바꾸고 정부 주도로 수출산업공업단지 개발에 들어간다.
 
공단 조성부지로 서울지역에서 구로동과 성수동, 광나루 주변이 거론되던 중 구로동이 선정된다. 당시만 해도 서울 변두리였던 구로동은 논과 밭, 야산으로 이뤄져 있어 땅값이 쌌고 대부분이 국유지로 토지확보가 용이하다는 점이 고려됐다. 주변에 하천이 있어 공업용수를 공급할 취수장 건립이 가능하고 영등포에서 수원으로 통하는 1번 국도와 경부선 영등포역까지 거리가 가깝다는 이점도 있었다.
 
1967년 4월 1일 진행된 구로공단 1단지 준공식 모습. 사진/한국산업단지공단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 제1단지로 조성된 구로동에는 초창기 동남전기공업을 포함한 10개 국내기업과 재일교포기업, 미국기업 등 31개 업체가 입주했다. 196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박람회인 한국무역박람회가 개최됐다. 1단지에 인접해 건설했던 박람회장은 행사 후 2단지로 변모했다. 얼마 후 인근 가리봉동 인근에 조성된 3단지는 이후 74년까지 건립된 서울·경인지역 6개 산업단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구로공단에서는 가발과 의류 등 경공업 기반 제품들을 생산해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뒷받침했다. 대개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여성근로자(여공)들의 값싼 노동력이 이를 뒷받침했다.
 
산업화 시절 여공들의 근무모습. 제공/서울 구로구청
 
여공들은 2~3평 크기의 쪽방이 30~40개씩 모여있는 '벌집'에 살며 하루 2교대 근무를 이어갔다. 근무를 마친 주간조가 겉모습은 단독주택이지만 복도 양편으로 단칸방 수십개가 붙어있는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야간조가 출근했다. 철야근무라도 있는 날에는 여공들은 각성제를 먹어가며 일했다. 이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74년 공단 내에 ‘수출의 여인상’이 건립됐다.
 
지난 2014년 9월 서울디지털단지 내 키콕스벤처센터 앞에 복원제막된 수출의 여인상. 사진/최한영 기자
 
구로공단에서 만들어진 섬유와 의류, 가발은 세계 곳곳으로 수출됐다. 1977년 수출액은 10억 달러에 이르러 국내 전체수출액의 10%를 차지했다. 'Made in Korea'의 명성이 나이어린 여공들의 손에 힘입어 전세계 곳곳에 알려졌다.
 
대한민국의 수출산업화를 선도해왔던 구로공단은 1980년대에 들어서며 침체의 늪에 빠졌다. 임금상승 등으로 생산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동남아나 중국 등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서서는 유가상승까지 지속됐다. 견디다 못한 기업들이 지방이나 해외로 이전하며 공단 곳곳이 비기 시작했다.
 
국내 제조업의 동향도 구로공단의 주류를 이뤘던 봉제, 섬유산업 등 경공업에서 정보통신기술(IT) 등의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옮겨가는 상황이었다. 단지 공동화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구로산업단지 첨단화 중장기계획'을 마련했다.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기반산업을 수용할 수 있는 첨단산업단지로 재탄생시키는 내용이었다.
 
연도별 구로공단 주요연혁. 자료/산단공
 
구로공단은 지난 2000년 서울디지털단지로 이름을 바꿨다. 인근 역 이름도 지난 2004년 구로공단역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개명했다. 가리봉역은 가산디지털단지역이 됐다.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직 직장인들이 식당을 메우는 서울디지털단지에서 과거 구로공단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아파트형 공장 설립 등의 변화에 발맞춰 이후 서울디지털단지는 중소벤처기업들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로구 구로동과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했던 산업단지를 묶어 현재 ‘G밸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곳은 디지털단지 선언 이후 IT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2010년 촬영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 구로공단) 전경. 사진/한국산업단지공단
 
G밸리는 현재 게임과 로봇, 교육, 기계·전자공학 등 융·복합산업의 진원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 20~30대 석·박사급 인력도 3000명을 돌파했다. '아이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만화캐릭터 뽀로로를 만든 아이코닉스도 이곳에서 한동안 사업을 진행했다. 
 
이밖에 3D 인쇄검사기, 원천기술에 기반한 필기인식 솔루션 등 창의력에 기반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강소기업들도 다수 입주해있다. 현재 G밸리에 입주한 기업 중 지식기반사업 비중은 81% 정도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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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