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아베 담화, 실망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외교적 고립’ 벗어나야

입력 : 2015-08-16 오전 10:40:14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발표한 종전 70년 담화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죄의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다. 외교부는 식민 지배에 대한 명백한 사죄가 빠졌다고 비판했다. 중국도 ‘성실하고 진지하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침략 전쟁과 식민 통치에 대한 분명한 반성과 사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국에 용기를 주었다며 역사를 왜곡했다. 한국은 러·일 전쟁의 결과 외교권을 박탈당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했다. 식민 지배에 대해서도 ‘가해국 일본’과 ‘피해국 한국’을 명시하지 않은 채 그저 식민 지배와 결별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전쟁 중에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크게 손상됐다고 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간접적으로 사과했지만, 곧바로 전후 일본이 ‘여성인권 지킴이’로 나섰다고 주장했다. 아베 자신이 2007년 위안부 강제 연행을 각의 결정으로 부인한 것을 잊은 듯한 주장이다. 국가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보상도 하지 않았으면서 여성인권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아베 본인이 직접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역대 내각에서 반성과 사죄를 거듭했다고 말했을 뿐이다. 간접화법 혹은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전후 70주년 담화인 만큼 총리의 직접 사죄가 있어야 했으나 이를 거부한 셈이다. 또 담화는 전후 일본의 국제공헌을 추켜세웠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교육·의료 지원을 소개하면서 8할이 넘는 일본의 전후 세대에 사죄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인의 전쟁 피해에 사과하면서도 최근 중국의 행태를 견제하는 듯한 표현도 들어 있었다. 담화에 나온 ‘법의 지배’ ‘평화적 해결’ ‘적극적 평화주의’는 미국, 일본 및 동남아 국가들이 모여 중국의 해양 진출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아베 정권은 집단자위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안보법제’의 제·개정을 강행해 동북아 군비 경쟁을 유발하면서도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화가 아닌 분쟁을 전제로 한 군사력 강화와 전쟁 억지력 확보에 가깝다.
 
현재의 아베 2차 내각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 반발해 결집한 우익세력을 대표하는 ‘일본회의’ 출신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이번에도 66명의 일본 국회의원들이 15일 대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각료들도 포함됐다. 결국, 무라야마 담화를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후퇴시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아베 담화에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대화와 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미 올해 들어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선회해 왔다. 연내에 한·중·일 정상회담과 동시에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시하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대일 비난을 반복하는 것을 부담으로 느꼈을 것이다.
 
한국 외교의 고립감이 커지는 것도 부담되는 대목이다. 중·일 정상회담이 다시 열려 동북아 정세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엄청난 불만을 자제하면서 대일 전략외교를 펼치고 있다. 또 일본은 북한과 납치자 문제에 대한 회담을 이어가고 있고,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있고, 역사와 영토 문제에 단호히 대처하는 것은 외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G2’ 체제에서 한국의 비중은 낮아졌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자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의 재무장을 인정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2020년까지 2400억달러 첨단무기를 미국에서 구입할 예정이다. 남·북 관계는 북한의 지뢰 도발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국을 일본,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지역 내 외교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 9월 한·중 정상회담, 10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외교적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 연말까지 한·중·일 정상회담과 동시에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임기 후반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가 외교적 위상을 다시 한 번 확보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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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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