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PBOC)은 달러·위안화 고시환율을 전날보다 1.86% 오른 6.2298위안으로 고시했다.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한 이후 일간 변동폭으로는 최대 규모다. 이어 인민은행은 12일과 13일에도 각각 1.6%, 1.1%의 추가 절하를 단행했다. 사흘동안 위안화 가치는 4.6% 하락했다. 이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출렁였고 일각에서는 중국발 환율전쟁이 시작됐다고 우려했다. 반면 인민은행은 "환율 제도가 시장 원리에 보다 근접하게 하기 위한 일시적 조치"라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14일 0.05% 절상된 고시환율을 발표되며 절하 행진은 멈췄지만 중국 금융 당국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경기 부양을 위한 선택이든,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환율 개혁의 일환이든 중국 정부의 의도를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야만 정책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해 예기치 못한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1일부터 사흘간 위안화를 4.6% 평가절하했다. 인민은행은 위안화를 시장 가치에 맞게 조정하려는 것이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사진/뉴시스)
중국의 위안화 환율 조정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환율 개혁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사상 최대폭의 위안화 평가절하와 함께 발표된 고시환율 책정에 시장의 수급 상황을 반영하겠다는 방침이 지난 2005년 달러페그제를 폐지하고 통화바스켓에 연동한 관리변동 환율제도를 도입한 것에 필적할만큼 획기적이라는 의견에서다. 그간 일간 환율 변동폭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지만 환율의 시장화에 보다 근본적으로 다가섰다는 평가도 곁들였다.
◇고시환율, 당국 의중 반영한 정책 수단
인민은행과 국가외환관리국이 매일 오전 9시15분(현지시간) 공고를 한다고 해서 고시환율이라고 불리는 '위안화 중간가격'은 12개 외국계 은행을 포함한 35개 시중은행의 호가를 표본으로 삼는다. 이들이 제출한 호가 중 최고치와 최저치를 제외하고 남은 가격들에 가중치를 적용해 산출한다. 가중치는 은행간 외환시장 거래량과 호가 지표 등을 종합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가 되지 않아 사실상 인민은행이 임의로 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위안화가 외환시장에서 비교적 큰 폭의 움직임을 보였더라도 전일과 비슷한 수준에서의 환율 고시가 가능했던 배경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말 외환시장에서 달러·위안화 환율은 10거래일 연속 일간 변동폭인 2% 상한을 넘어서 거래가 중지됐지만 다음날에는 항상 전일과 비슷한 수준의 기준환율이 고지됐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고된 작년 11월 이후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6.20위안대로 0.1위안 정도 절하된 후 줄곧 안정적인 추세를 나타냈다.
이 때문에 위안화 중간가격 산정에 전일 외환시장의 종가를 반영하겠다는 것은 환율 매커니즘에서 당국의 입김이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하다.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재무부 등이 위안화 평가절하에 대해 잠시 판단을 보류하고 "시장의 역할을 좀 더 강조하겠다는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한 조치"라고 입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IMF '특별인출권' 편입 가까워질까
경제학자들이 이번 위안화 평가절하를 신환율개혁으로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경제적인 유인보다 정치적인 유인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환율 조정의 단기적 효과로 지목되는 수출 진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10% 이상의 평가 절하가 수반돼야 하지만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위안화 환율의 인상폭은 그보다는 적을 것이란게 다수의 시각이다.
쉬가오 에버브라이트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전문지 차이신에 기고문을 통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신환율개혁이 필요할 만큼의 긴박성을 찾기는 다소 어렵다"며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가 지목한 정치적인 요인은 중국 정부가 IMF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위안화의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 편입이다.
이달 초 IMF는 64페이지에 이르는 'SDR 평가방법 검토: 초기제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위안화가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을 위해 보완해야 할 점들을 지적했다. 그 중에서도 IMF는 위안화 환율 운영 시스템에 주목했다. SDR에 대한 상대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한 시장을 기초로 한 대표성이 필요한데, 위안화의 경우에는 중국 역내 외환시장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당국의 통제로 실제 시장 가격과 괴리를 보인다는 이유로 IMF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시 말하면 위안화가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는 통화라는 점이 증명돼야만 그토록 바라던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돼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진중샤 IMF 집행이사는 차이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IMF의 요구치는 자본계정의 완전한 태환도 아니고 모든 국제금융센터에서의 거래도 아니다"라며 "위안화가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만 제시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에서 중국 정부의 고시환율 산정기준 변화가 의미를 갖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IMF가 중국의 첫번째 평가절하가 단행된 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보다 유연한 환율 시스템은 글로벌 금융시장으로의 빠른 유입을 유도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견을 남긴점도 같은 이치다. IMF는 이어 "시장이 결정하는 환율 매커니즘은 위안화가 SDR에 편입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중국은 앞으로 2~3년 안에 효율적인 변동환율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 중인 SDR 검토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가절상도 똑같이 용인할 수 있나
이처럼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환율전쟁 동참이 아닌 환율개혁 시동으로 볼 만한 정황은 충분하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개운하지 못한 시선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지적은 지금과 반대로 경제 환경이 좋아 평가절상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이번처럼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중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분명 글로벌 경제에 좋은 현상이지만 이번 조치가 위안화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을 완화할 것이란 명확한 신호가 되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존 하디 삭소뱅크 외환투자전략가도 마켓워치에 "중국의 자유변동환율제로의 전환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며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함을 전했다.
더 나아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즈의 기고문을 통해 "중국의 지도자들은 현재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혹평을 남겼다. 증시 급락 후 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여러가지 대응책을 내놨지만 이렇다할 효과를 내지 못했던 최근 상황과도 연계해 "갈팡질팡하는 정책들로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지도부는 시장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달랐다는 것이다.
선젠광 미즈호증권 아태지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의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는 어떠한 정책도 효과를 낼 수 없다"며 시장 참여자들의 오해를 줄이는데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혁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도 첨언했다. 뉴욕타임즈도 위안화가 달러나 유로처럼 국제적인 통화로 널리 통용되기를 바란다면 환율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비슷한 맥락의 제언을 했다. 환율제도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인 변동환율제도 시행과 위안화 자본계정 개방에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간 변동폭을 3%까지 확대하는 것을 논의할 게 아니라 정부가 현물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비교적 큰 구간의 변동폭만을 설정해 환율의 자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이 보다 실사구시적인 관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