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가 거리를 활보한다면 이는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 중 어느 쪽의 성과일까. 전문가들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자율주행 시대에는 소프트웨어 비중 증가에 따라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이 IT 업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예측한다.
19일 LG경제연구원은 ‘자율주행차, 미래를 보는 창’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자율주행차는 자동차 관련 비즈니스 환경을 구조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기점으로 등장할 비즈니스 모델을 가늠하고 새로운 수익 창출 가능성을 짚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험실에만 머물던 자율주행차를 시장에 전격 등장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완성차 업체가 아닌 IT 거인 ‘구글’이었다. 구글은 지난 2009년부터 자율주행차 개발에 착수했다.
구글이 도요타의 프리우스와 렉서스 등을 개조해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을 실험한 일명 ‘구글카’는 20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주행에 성공하면서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구글은 여기에 만족치 않고 지난해 5월 브레이크, 엑셀 등이 없는 2인승 자율주행차 시제품을 공개했으며, 적어도 5년 이내에 이를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구글의 자율 주행 자동차 주요 사양. 자료/구글, Carnegie Mellon University
구글만이 아니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애플 역시 자율주행차 시범 주행을 추진 중이다. 애플은 이미 ‘프로젝트 타이탄’이라는 명칭의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을 진행하며 전문 자동차 인력을 확보해 왔다. 여기에 바이두, 소니, 우버 등의 IT 업체들까지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서고 있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할 경우 자동차 시장의 진입장벽이 와해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되고, 이는 IT 업계의 미래를 담보할 신성장 동력의 가치로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애플의 카플레이(Car Play)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Android Auto) 등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제공하는 자동차용 운영체제는 향후 안전 및 주행기능이 강화될 경우 자동차 전반의 핵심 소프트웨어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자율주행차가 산출할 데이터 양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를 분석·처리하는 소프트웨어도 한층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구글의 경쟁 촉발로 다른 완성차 기업들도 자율주행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부분 오는 2020년 전후로 자율자동차를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핵심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또 관련 법규 개정 및 인프라 구축에도 열심이다.
우선 완성차 업체들은 부분적인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장에서 당장 사용 가능한 기술들을 통해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현재 주행 환경에서 당장 상용할 수 있는 제한적 자율주행 기능을 우선적으로 출시하고 이후 완전한 수준의 자율주행으로 점차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테슬라는 운전자의 조작 없이 고속도로에서 달릴 수 있는 ‘싱글레인 하이웨이 오토파일럿(Single-lane Highway Autopilot)’이라는 기술을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 또 닛산은 교통 혼잡 시 자동차가 스스로 저속 주행할 수 있는 ‘트래픽잼 오토파일럿(Traffic Jam Autopilot)’ 기능을 2016년 말 출시하고, 자율주차나 도심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된 차량도 2018년 이후 순차 출시할 계획이다.
구글이 개발한 자율주행 자동차 렉서스 SUV. 사진/AP·뉴시스
시장의 변화도 발빠르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조사 기관들은 오는 2020~2030년 이후 자율주행차가 빠르게 성장해 2040~2050년에는 전체 자동차 판매 시장의 75%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문제는 정점에 도달한 하드웨어 기술만큼 소프트웨어 품질을 개선하는 것이 과제다. 거친 도로나 불규칙한 기후 등에서도 성능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며, 지도와 실제 지형이 다르거나 도로가 폐쇄되는 등의 돌발변수 대처 능력도 키워야 한다.
또 자율주행차의 성능과 직결되는 IT 부품의 안전성 기준도 강화될 것으로 보이며, 자율주행차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획득 및 남용 이슈도 첨예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자율주행차에 대한 법규 제정은 여전히 가장 큰 난제다. 교통법은 특성상 기술의 진보성보다는 안전 등 보수성을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의 사고 발생 시 그 책임을 운전자와 자동차 제조사 중 어느 쪽에 물을 지도 미래 예측가능한 이슈다. 이에 따라 자동차 보험시장도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혁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현재의 기술 수준과 정책 논의 진행 상황에서 자율주행차가 빠른 시일 내에 상용화돼 시장 주류를 차지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이런 제한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차의 도래는 필연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와 IT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더욱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란 관측이다.
김 연구원은 “현재 완성차 기업을 정점으로 여러 부품 기업들이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수직적 가치 사슬 구조가 붕괴되고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비중 있게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차 등장으로 예상되는 대표적인 비즈니스 환경 변화는 화물 운송업과 택시 등의 수송 서비스다. 인건비 절감에 따른 획기적 요금 인하와 운전자 과실로 발생했던 사고 감소 등이 기대된다. 또 최근 트렌드가 되고 있는 차량 공유 서비스 등을 더욱 촉진시켜 자동차 산업에서 매매보다 이용성 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구글이 뉴욕시와 맺은 자율주행 택시 5000대 제공 계약 체결, 우버의 피츠버그 자율주행차 연구소 설립 등의 움직임을 주목할 만하다.
한편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7일 제1차 무인이동체 발전 협의회를 개최했다.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10대 핵심부품 및 5대 서비스 국산화 추진(산업부) ▲시험운행을 위한 임시운행허가 기준 마련(국토부) ▲시범도로 테스트베드 구축(국토부) ▲차량 간 및 차량·인프라 간 통신전용 주파수 확보(미래부)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 연구원은 “자동차가 더욱 완전한 자율주행 수준을 갖출수록 자동차 산업은 미래 비즈니스의 가장 중요한 격전지로 부각될 것”이라며 “아울러 자율주행차 등장은 향후 인공지능 시대에 등장할 고용, 법과 제도, 사이버 리스크 등의 논란들도 미리 검토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김미연 기자 kmytt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