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도발' 충격 받은 한국 경제, 대화론 동력 될까

정부 “북한 리스크 영향 제한적” 주장하지만…‘강대강’ 치달아 근심 깊어져
군사적 위기 계속될 경우 경제 전반으로 확산 가능성

입력 : 2015-08-23 오후 1:31:59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치솟으면서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들이나 금융 전문가들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남·북이 ‘강대강’으로 치닫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코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의 포격 도발 다음날인 지난 21일 금요일 금융시장은 패닉 양상을 보였다. '차이나 리스크'에 '한반도 리스크'가 겹치면서 크게 출렁거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전날보다 38.48포인트(2.01%) 떨어진 1,876.07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 2013년 8월23일 1,870.16을 기록한 이후 2년 만에 최저치였다.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 중단 시한으로 못 박은 22일 오후 5시 이후 추가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과 중국의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2009년 3월 이래 6년5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중국 주가가 추가 폭락하고 있다는 소식이 악재로 작용했다. '공포 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VKOSPI)의 경우 장중 한때 19.18까지 치솟으며 올해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코스닥도 5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29.66포인트(4.52%) 폭락한 627.05로 마감했다. 코스닥은 장중 한때 6.34% 떨어진 615.10까지 추락하기도 하는 등 하루 종일 출렁이는 흐름을 보였다. 특히 이날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닥 시장 개장 이후 최대 규모인 2045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원화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9.9원 폭등한 달러당 1,19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11년 10월 4일(1,194.0원) 이후 3년10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부도 위험 지표인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의 경우는 이날 2년 3개월 만에 최고로 올랐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북한의 도발이 금융시장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날 오전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주형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과거 경험으로 볼 때 북한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단기에 그치고 그 크기도 제한적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국제금융센터와 합동으로 개최한 ‘금융시장동향 점검회의’에서도 같은 얘기가 나왔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북한 리스크가 국내 증시에 미친 영향은 역대 3번째로 꼽힌다. 그동안 증시에 가장 큰 충격을 준 북한 이슈는 2011년 12월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로, 당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3.4% 떨어졌다. 그 뒤를 이은 사건은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2006년 10월9일 당일의 경우 코스피가 전날보다 2.4% 하락했다.
 
하지만 그 외의 북한 관련 사건들은 코스피에 –1%대 미만의 영향을 끼치는데 그쳤다. 그마저도 하루 이틀 단기적인 영향이 있었을 뿐 머지않아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 반복됐다. 그럴 때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미 시장에 반영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뒤따랐다. 이번 사태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주형환 차관의 전망은 이같은 과거 경험과 분석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남·북이 대화 시도 등 긴장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태가 악화되고 장기화할 경우 이번 주 초반 금융시장은 또 다시 패닉 상태에 빠질 공산이 크다. 이번 사태 직후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반응이 2010년 연평도 포격이나 2차·3차 핵실험 때보다 더 민감하게 나타난 것은 남·북이 한치도 양보할 것 같지 않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태가 길어질 경우 금융시장에 미친 악영향은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7일 20명의 사망자를 낸 방콕 테러 이후 태국의 관광업이 위축되는 등 전체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위기지수가 치솟았던 2009년 6월 ‘북한이 인천공항 활주로에 미사일 2~3개만 쏘면 공항이 폐쇄되고 한국 경제는 마비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회자된 적이 있다. 최근 남·북의 분위기로 볼 때 그같은 일이 실제 벌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이런 암울한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올 경우 정부의 대북 강경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힘은 결국 수출 대기업이나 기관투자자 등으로부터 나올 것이란 예측이 있다.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동력은 ‘잃을 것’이 많은 남한, 그 중에서도 경제계에서 나올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재벌 대기업들이 청와대의 대북 강경론을 주저앉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 정부가 자국에서의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들을 압박해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했던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21일 재벌닷컴은 10대 그룹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지난 일주일새 30조원(4.6%) 증발했다고 밝혔다. 증시의 패닉을 가져오는 대내·외 악재를 줄여야 하는 이들 기업들이 한반도 정세의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북한의 포격 도발과 남한의 대응사격이 벌어진 다음날인 지난 21일 코스피와 코스닥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외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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