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 한·일 정상회담 없다’고 공표했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일본 정부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차원이었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외교는 없었다. 그래 놓고 이제와 그 원칙을 내려놓기 위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 아베 담화에 긍정적인 점수를 매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지난 20일 열렸다. 대표적인 위안부 관련 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이 주최해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던 박 대통령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지적했다. 위안부 해결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전제조건으로 걸어놓기만 했을 뿐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지 않았던 게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고 있어온 결과는 최근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분위기이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따라 한·일 관계 개선도 지연되고 있는데, 그 상태가 길어지다 보니 위안부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는 이들이 마치 양국관계 개선을 방해하는 것처럼 비춰지게 된 것이다. 윤 대표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는 정대협의 요구가 한·일 화해를 가로막고 있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형국에서 우리의 정당한 목소리마저도 위축받고 있다”며 “시작도 해보지 않고 수년 동안 뒷짐을 진 상태에서 정대협의 활동을 관망하던 (한국 정부의) 외교”를 거듭 비판했다.
윤 대표는 “한국 정부의 노력은 주로 일본이 해결책을 만들어내기만을 바라봤던 측면이 강하다”며 2013년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간 프랑스 파리에서 엠네스티 등 인권단체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소개했다. 그는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파리에 있는 인권단체들을 초청해 매월 1회 간담회를 갖는데, 북한 인권 문에 대한 협조 요청만 있었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라며 “위안부 문제가 정부의 외교정책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외교 활동에는 무엇이 있는가. 윤 대표의 주장은 “중재 절차를 진행하는 일”이었다. 이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것이다. 청구권협정 제3조는 이 협정의 해석과 실시에 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정부의 외교적 해결 의무와 중재 회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2011년 헌재는 위안부 분쟁이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양자 협의나 중재 회부 등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14년 4월부터 지난 6월까지 여덟 차례 한·일 양자 협의를 진행했지만 진전될 기미가 없기 때문에 이제는 중재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윤 대표의 주장이다.
아울러 윤 대표는 “정부는 위안부 생존자들과 옛 일본 병사들의 증언 등을 체계화하고 관련 문서와 사진 등 정보를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해 ‘공공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19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길원옥 할머니가 한 초등학생으로부터 돼지저금통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