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은행권이 좌불안석이다.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때문이다.
현재 CMA는 은행계좌에 필적할 수준의 '업그레이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미 이달초 CMA 연계 신용카드가 출시된 데 이어 다음달부터는 CMA에 지급결제기능이 추가된다.
게다가 CMA는 직장인들의 월급통장으로 널리 사용되는 수시입출금식 예금에 비해 훨씬 높은 금리를 제공한다. 그간 수수료 인하 요구 등에도 꿈쩍않던 은행권은, 이제 CMA를 향한 '머니무브'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뒤늦게 화들짝..고금리 통장 출시 경쟁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고객들의 자금이탈을 막기 위해 올해 초부터 다양한 수수료 혜택을 부여하거나 고금리를 제공하는 월급통장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기업은행은 이번달부터 '아이플랜 통장' 이용고객에게 각종 수수료 우대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상품은 월평균잔액이 30만원을 넘을 경우 다른 은행의 자동화기기에서 현금을 인출할 때 내는 1000~1200원가량의 수수료를 면제해준다. 또 급여이체 고객에게 최고 연 2.7%의 금리를 제공하고, 가입한 지 3개월이 지나면 신용대출 시 우대금리를 적용해주고 있다.
앞서 우리은행은 하루만 맡겨도 연 1.7~4.1%의 금리를 제공하는 'AMA플러스 급여통장'을 출시했고, 신한은행 역시 급여이체를 할 경우 5년간 전자금융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탑스 직장인플랜저축예금'을 판매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하나대투증권의 CMA와 연계돼 연 2% 중반대의 금리를 제공하는 '하나 빗팍 통장'을 선보였다. 국민은행은 'KB스타트 통장' 고객에게 평균잔액 100만원 한도에서 연 4%의 금리를 지급한다.
A은행 상품개발부 관계자는 "수수료 수입을 일정 부분 포기하더라도 급여계좌를 유치하고 있는 것이 영업에 훨씬 도움이 된다"며 "그동안 직장인들의 월급통장으로 널리 사용되는 수시입출금식 예금의 경우 금리가 0.1%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CMA와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자금이탈 아직은 정중동
이처럼 시중은행들은 CMA를 향한 자금이탈이 가속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CMA 신용카드 모집이 시작된 이후 CMA 총잔액에는 커다란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번달 19일 현재 CMA 총잔액은 38조5000억원으로 5월말 집계된 38조4000억원에 비해 1000억원(0.3%)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은행에 월급계좌를 유지할 경우 개인신용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등에서 금리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금이탈 폭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말 현재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248조4626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1550억원 늘어났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 2007년 6월 증가세로 돌아선 뒤 23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는 등 가계대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아직까지는 CMA에 대한 인식이 '투자상품'에 가까운 것도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기능만 놓고 볼 때 은행의 월급계좌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직장인들의 주력 통장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고객이탈 방지 비용 급증 우려
은행들이 다양한 혜택을 장착한 월급통장을 잇달아 출시한 것도 고객들의 '변심'을 막는 데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은행권이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니다. 당분간 일정 수준의 균형상태가 지속되겠지만, CMA를 향한 자금이탈은 불가피하다는 게 금융권의 전망이다.
정보승 한화증권 연구원은 "CMA를 통한 지급결제가 시작되고 다양한 혜택이 붙기 시작하면 돈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자금이 빠져나가면 은행권은 대출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해야 하고, 이것이 결국 조달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수익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시장에서는 올 3분기 은행권 실적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4분기에는 다시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실적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자금이탈에 따른 조달금리 상승 가능성이 꼽히는 상황이다.
은행권과 증권업계의 월급통장 유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금융감독당국은 과당경쟁을 자제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허위광고나 과다한 경품제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무자격자가 CMA카드를 발급할 수 없도록 미스터리 쇼핑을 실시할 계획이다.
뉴스토마토 박성원 기자 want@etomato.com
- Copyrights ⓒ 뉴스토마토 (www.newstomato.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