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 생태계가 다원화되고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를 필두로 훌루, 아마존 프라임 등의 OTT(Over The Top) 서비스가 잇따라 출시되며 동영상 콘텐츠 소비의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사라졌다. TV, PC, 스마트폰, 태블릿PC, 게임 콘솔 등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N스크린 환경이 조성되며 'TV프로그램-방송플랫폼-TV수상기'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TV 시청 구조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TV수상기를 없애거나 유료방송에 대한 지출을 줄이는 이른바 '코드 커팅(cord-cutting)', '코드 쉐이빙(cord-shaving)', '코드 네버(cord-nevers)' 가구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사이트인 넷플릭스가 내년 초 한국 진출을 공식화했다. 국내 유료방송 업계에서는 넷플릭스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있지만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에 변화가 나타날 것임에는 공감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이 같은 추세는 방송 시장이 가장 잘 발달돼 있는 곳으로 꼽히는 미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유료 방송 요금의 20~25% 정도에 불과한 10달러 안팍의 월정액 요금으로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 매혹된 이용자들의 노선 변경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료방송 이용 경험이 적은 밀레니얼 세대(18~34세)의 경우 처음부터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를 선택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지난 2012년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가 미국 최대 케이블 사업자인 컴캐스트를 추월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송·압축 기술 발달로 OTT 시장 확대 박차
시장조사기관 ABI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OTT 시장의 매출 규모는 2013년 120억 달러에서 2018년 433억 달러까지 연평균 53%의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가입자 수도 2013년 12억 명에서 2018년 19억 명으로 매년 평균 12% 정도씩 증가할 것으로 예견됐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 IDC가 미국 시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OTT 서비스 가입자 수는 2012년 4270만 명에서 2017년 81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 중 70% 이상이 유료방송과의 중복 가입자이긴 하지만 5년 만에 가입자 수가 두 배로 증가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OTT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통신 인프라의 개선이 있다. 광 인터넷과 LTE 등 네트워크 전송 기술과 HEVC 등 압축 기술의 발달로 이용자들이 고화질 영상을 접할 때의 불편을 크게 줄였다. 글로벌 모바일 트래픽 중 영상 콘텐츠의 비중이 2012년 51%에서 2017년 66.5%까지 늘어날 것이란 시스코의 전망이 이를 뒷받침한다. 스마트폰, 태블릿PC, 게임콘솔 등 인터넷 접속 단말 보급 확대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이들 단말기를 통해 콘텐츠 소비 환경이 온라인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전환돼 소비자 친화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나타나 이용자들의 편의를 높였다.
◇넷플릭스, DVD 대여점에서 OTT 선구자로
글로벌 OTT 시장에는 기존의 방송·통신 사업자들도 참여하고 있지만 콘텐츠 생산자나 단말기 제조업자와 같은 제3의 사업자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선두 주자를 꼽자면 단연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1997년 비디오와 DVD를 우편·택배로 배달하는 서비스로 시작했다. 인터넷(Net)과 영화(Flicks)의 합성어로 조합된 사명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사업 초창기부터 인터넷으로 영화를 유통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인터넷 스트리밍을 만나 기존의 콘텐츠 유통 구조를 위협하는 데까지는 10년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연체료 대신 구독료를 받는 역발상으로 비디오 대여 업계 강자 '블록버스터'를 몰락시켰던 넷플릭스는 월 최소 7.99달러라는 저렴한 요금으로 방송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케이블 사업자들의 아성에 도전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올 상반기 기준 넷플릭스의 미국 내 가입자 수는 4230만 명. 2분기에만 90만 명이 새롭게 넷플릭스를 구독했다. 같은 기간 유료방송의 가입자가 56만6000명이 줄었다. 넷플릭스는 미국 최대 케이블 사업자인 컴캐스트의 가입자 수를 넘은데 이어 2013년에는 왕좌의 게임, 히어로즈, 소프라노스 등으로 유명한 영화전문 채널 HBO의 가입자 수를 추월했다. 작년 2분기에는 HBO의 구독자 매출을 500만 달러 차이로 근소하게 앞지르기도 했다. 몸집 불리기에 성공한 넷플릭스는 단순 콘텐츠 수급을 넘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영역에까지 힘을 확대했다. 실시간 방송이 없고 콘텐츠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행보다. 이들이 투자와 제작을 총괄한 '하우스 오브 카드'가 TV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에서 2013년 감독상, 촬영상, 캐스팅상을 수상한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훌루·스트림·HBO나우 등 후발 주자 동참에 춘추전국시대 열려
넷플릭스의 성공에 후발 주자들의 시장 진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존의 채널 사업자와 케이블 사업자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스트리밍 미디어가 영상 콘텐츠 소비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흐름을 거스르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HBO는 지난 4월 'HBO 나우'라는 OTT 서비스를 론칭했다. 지금까지 약 5개월 간의 가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중 매달 14.99달러의 요금을 지불하는 유료 이용자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기존 미디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는 긍정적이다. 지난 7월에는 컴캐스트가 24시간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트림'을 공개했다. 컴캐스트의 주문형 콘텐츠 서비스인 '엑스피니티(Xfinity)' 이용자들이 매달 15달러를 추가해야 이용할 수 있고, 인터넷이 연결되는 모든 환경이 아닌 엑스피니티존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지만 가입자 이탈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스트림은 보스턴을 시작으로 내년 초 시카고, 시애틀 등지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뉴스코퍼레이션과 NBC유니버셜이 공동 투자한 훌루도 신흥 강자로 부상 중이다. 시리즈가 완결돼야 서비스가 되는 넷플릭스와 달리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도 1~2일 후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빠르게 가입자 규모를 늘리고 있다.
OTT 서비스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면서 틈새 시장을 노리는 업체도 등장했다. 캐나다의 독립 방송 플랫폼인 '글래스박스TV'를 만들었던 제프리 엘리엇과 조셉 어큐리는 '테이블락(TableRock)'이라는 OTT 서비스를 론칭했다. 항공비행, 모터사이클, 기타 등 개인의 독특한 관심사와 취미 생활에 초점을 맞춘 테이블락은 전통 미디어에서는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을 파고 들었다. 엘리엇은 "하나의 장르만을 다루는 채널이 보기에 따라서는 이상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는 충분히 시장성이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용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잘 만들어진 콘텐츠에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는 소비자가 따른다는 설명이다. 그는 "개별적으로 수 백만 달러의 가치를 가진 산업을 다루는 것은 전통 TV에서는 할 수 없지만 OTT 영역에서는 가능하다"며 "다른 방송 채널과도 병존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덧붙였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