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이르면 다음달 출범을 목표로 한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을 철회했다.
수조원대의 출자금액과 대출약정이 부담스럽다는 은행들의 불만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기관 신설로는 연내 구조조정 업무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한 전격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이는 연말 개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서둘러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금융위원회는 은행연합회가 소속 은행들의 의견을 모아 구조조정전문회사 신규 설립보다는 유사 기능을 수행중인 유암코(연합자산관리)를 확대 개편해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방안을 건의했고 이를 수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당초 8개 은행(산업·수출입·국민·신한·우리·기업·농협·하나은행)이 각각 1200억원, 한국자산관리공단(캠코)이 400억원을 출연해 자본금 1조원의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자본금과 별도로 은행권은 대출 2조원도 투입한다.
하지만 금융위 관계자는 "신규 설립에 따른 시간 소요 및 인력 채용 등의 비용을 절감하고, 유암코의 우수한 구조조정 인력 활용이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하는데 보다 효율적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위원회는 지난 11일 공청회까지 마친 상태다. 금융위 관계자까지 참여한 공청회장에서는 구조조정전문회의사의 자본 운영 계획, 기업 조직도, 출범 일정이 모두 공개됐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채권단 의견을 지속적으로 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청회까지 추진됐다"며 "금융위에서도 다음달 출범을 목표로 하기 위해서는 유암코 조직으로 흡수하는 것만이 가능하겠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시장의 의사를 존중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불과 최근까지 임 위원장은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에 힘을 실어달라"고 주문해왔다.
이날 오전 은행연합회가 금융위에 신설 철회안을 건의하기 전인데도 은행권의 건의를 수용하겠다고 발표를 하는 혼란도 빚어졌다. 당국이 은행들의 건의를 들어준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연말 개각을 앞두고 각 부처 장관들이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것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말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줄줄이 교체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도 앞으로 2~3개월 골든타임동안 묵은 과제 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 내부에 우리은행 매각 협상전담팀을 꾸리고 중동 3개 국부펀드와의 협의에 돌입했고, 산업은행 자회사인 대우증권 매각도 내달 중 매각공고를 낼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초 취임 때부터 금융개혁을 이끌어왔던 임종룡 위원장의 행보가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반기 들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위해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