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우리는 돈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로부터 "상스럽다. 점잖지 못하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런데 요즘은 돈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 점점 자주 들린다. 왜?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자기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돈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당장 어린 아이들이 미래에 파산 또는 대출의 지옥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금전감각을 익혀야한다.
왜 지금 당장 해야하는가
이렇게 얘기하면 벌써부터 아이에게 돈을 알게 하면 어린이다운 맛을 잃을 수 있다며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던 시절 특별한 절약습관 없이도 예금만 하면 10%대 이자를 받을 수 있었던 세대여서 가능한 좋은 생각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미래의 세대는 모두 스스로 책임져야한다. 개인의 삶을 기업이나 국가가 책임져 줄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내일을 짊어질 어린 세대가 건전한 경제관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전교육, 5세부터 자연스럽게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고민은 나이를 불문하고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모든 부모에게 고민이다. 최근 강남 PB센터에서 만난 VIP고객 A씨는 “미국으로 유학까지 보낸 아들이 서른 넷에 장가를 가서 한시름 놨는데 몇 달전 사업 자금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며 "부족함 없이 키운 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자책했다.
그렇다면 금전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일본 비영리단체 NPO 머니 스프라우트는 자녀 금전 교육은 주로 5세 전후 유치원시절이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어릴 때부터 금융에 친숙해지고 그 속에 베인 금융철학을 자연스럽게 익히게끔 하는 것이다. 부자의 훈육방법은 더 엄격하다. 돈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면 사람의 미래를 망칠수도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 파이낸스센터 NH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센터 조재영 부장은 "부자가 다른 점은 무엇이든 확실하고 제대로 짚고 넘어간다는 것"이라며 "과정은 고되고 어렵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록펠러 "돈은 호되게 가르쳐라"
세계적으로 알려진 부호들도 5세부터 주로 경제교육을 시작했다. 앤드류 카네기는 ‘부자는 3대를 못 간다.’ 라고 했지만 석유왕 록펠러 일가는 4대가 지나도록 망한 자식이 없다. 훌륭한 경제교육이 그 비결이다. 미국의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노동의 대가로 시간당 10센트를 받는 등 아버지와 용돈 계산하는 것에 무한한 재미를 느꼈다. 이러한 경제관에 따라 록펠러 2세, 3세 4세까지 모두 어려서부터 노동의 대가로 용돈을 받고 이를 어기면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또 용돈기입장을 쓰게 해 지출내역을 기록함으로써 절약을 가르쳤다. 이는 자녀의 경제적 독립을 키워주려는 산교육인 셈이다.
홍콩 최고 부호 리자청 "현장에 참여하게 하라"
중화권 최고 부자인 청쿵그룹의 리자청 회장도 자녀교육에 일가견이 있다. 리자청 회장은 두 아들 빅터와 리처드가 각각 아홉살, 여덟 살일 때부터 회의실에 작은 의자를 가져다놓고 중역 회의에 참관하도록 했다. 회의 도중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고성이 오갈 때 아이들이 울면 리 회장은 좋은 안이 나오기 위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다독였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두 아들은 사업적 감각과 자신감을 키운다.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 꿈을 펼치려한 두 아들에게 능력을 검증받지 않았다며 단번에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에 두 아들은 따로 사업체를 차렸고 빅터는 부동산개발업체로, 둘째는 투자은행으로 크게 성공했다. 아버지 뒤를 이어받은 빅터는 지금도 리자청 회장을 최고의 비즈니스선생님으로 꼽는다.
자녀의 경제적 독립, 사회전체번영에 도움
금전교육이 보편화된 미국에서도 부모들은 자녀의 경제적 독립을 돕기위해 애쓴다. 아버지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뚜렷한 경제관을 세워주고 경제적으로 독립심을 키워주려한다. 이를 위해 아버지는 아이 혼자 일을 처리 해도록 가르치고 스스로 돈을 벌도록 격려한다. 그러면 겨우 여덟 살 먹은 아이도 '어린 장사꾼'이 되어서 그들의 상품을 팔아 용돈을 마련할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대출을 받아 학교 등록금을 내고 집과 자동차를 구입하더라도 대부분 그들이 스스로 갚아나간다. 부모 역시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그 돈으로 자연스럽게 사회보장서비스를 누린다. 국내 대형운용사 대표는 "미국은 세대간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는 방식이 전체적으로는 사회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된다"며 "미국 청소년들이 경제적 독립을 갖추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처럼 캥거루족, 부모세대의 노후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일은 만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국, 부모가 더 문제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금융교육에 있어 어른들의 태도가 너무 수동적이란 지적이다. 언제나 부모의 지갑은 아이를 향해 열려있고 제약 조건이 없다. 심지어 교육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버티고 있다. 전문가들은 “요즘 아이들은 어느 때 보다 좋은 형편에서 자라고 있다"면서도 "이런 환경을 아이 교육에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주도권을 주고 그 과정을 적절히 이용하면 아이는 비로소 금전감각의 기초를 다지게 될 것이란 조언이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