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국정감사가 7일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성범죄 사건에서 잇따른 무죄 판결이 내려지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은 이날 "계속되는 성폭행·성추행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현실을 외면하고, 국민의 법 감정에 반하는 기계적 판결을 내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8월18일 자신의 집 안방에서 잠을 자려던 처제의 몸을 만지고, 다른 방으로 옮기자 이불을 덮어주는 척하며 다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A(49)씨에 대해 첫 번째 성추행을 유죄, 두 번째 추행을 무죄로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번째 추행에 대해 처제가 형부를 피해 다른 방으로 간 상황에서 계속 추행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처제가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은 점을 들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는 "성폭력의 의미를 축소·왜곡하는 최협의적 해석을 기본으로 장착한 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피하거나 저항해야 한다고 책임을 전가했다"며 "강제성이 없으면 기습추행이어야 한다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탄생시킨 최악의 판결 중 하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영교 의원은 술집에서 모르는 여성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김모(26)씨가 원심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도 제시했다.
이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얼굴을 돌리거나 입술을 굳게 다무는 방법으로 추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5월12일 속옷 차림으로 20대 여직원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시키고, "더 위로, 다른 곳도 만져라"고 요구하는 등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사장 조모(41)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1심에서는 조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강의 80시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폭행 또는 협박은 없었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서 의원은 "심리적 억압상태에서 이뤄진 행위에 대해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고 강제추행죄를 무죄로 선고하는 것은 지나친 기계적 판단"이라며 "예측 가능성과 적극적 저항 여부 등 피해자의 태도에 따라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고려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법원과 중앙지방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실시된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