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OS)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실체가 없는 그녀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고, 친구들과 더블 데이트도 즐긴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Her’의 줄거리다. OS와 사귄다는 것은 영화적 설정이나, 가상의 서비스와 농담을 주고받는 것 정도는 이미 현실이다. 애플의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Siri)에게 “몇 살이야”라고 물었더니 “우리 사이에 나이는 상관없잖아요”란다. 신기함 반 재미 반 삼아 자꾸 얘기를 걸게 된다.
이같은 가상 비서(Vitual assistant)들이 더욱 똑똑해지고 유머러스해질수록 사람들은 이들과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밀착된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ICT 기업들의 ‘가상 비서 서비스’ 경쟁에 불이 붙고 있는 이유다.
가상 비서 서비스는 기기가 이용자의 습관 혹은 행동 패턴을 학습해 개인에게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를 마치 비서처럼 제공하는 것으로, 주로 음성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제공된다. 시장조사 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38%는 최근 스마트폰에서 가상 비서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으며, 2016년 말까지 선진국 소비자의 약 66.7%가 매일 이 서비스를 이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최근 ‘글로벌 ICT 기업의 가상 비서 서비스 동향’ 보고서에서 “이용자가 원하는 바를 예측해 적시에 정보를 제공하는 능력은 브랜드 혹은 운영체제 로열티 유지와 광고업체 등과의 관계 유지에서 중요하고, 향후 스마트 워치나 커넥티드 카 등의 기기에서도 매우 중요할 것”이라며 “향후 글로벌 ICT 기업들이 가상 비서 서비스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가트너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38%는 최근 스마트폰에서 가상 비서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으며, 2016년 말까지 선진국 소비자의 약 66.7%가 매일 이 서비스를 이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진/AP·뉴시스
애플은 지난 2010년 시리를 인수한 데 이어 2013년 개인 비서 서비스 제공 앱인 ‘큐(Cue)’를 인수해 고도화된 가상 비서 서비스 기반을 다졌다. 애플은 시리의 검색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올해 6월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 2015)‘에서는 iOS9에 탑재되는 능동적 비서 ’프로액티브 어시스턴트(Proactive Assistant)’를 발표했다.
시리는 스포트라이트 검색 기능을 통해 이용자가 어떤 앱을 사용하고 어떤 사람과 의사소통하는지 등의 정보를 수집해 앱과 연락처 등을 추천한다. 또 이용자의 정기적인 습관을 학습해 연관 시스템을 자동으로 가동한다. 이용자가 아침에 운동용 음악을 정기적으로 듣는다면 아침에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을 때 자동으로 운동용 음악을 재생해주는 식이다. 아울러 이메일에 접근해 회의 일정을 달력에 입력하고 회의 시간에 맞춰 알람을 제공하거나, 이메일에 입력된 연락처 정보를 인식해 전화가 왔을 때 수신처에 대한 정보도 알려줄 수 있다.
구글은 ‘구글 나우’를 통해 지메일, 달력, 유투브 등 서비스에 저장된 위치, 시간, 애플리케이션 사용 정보 등을 파악한다. 예컨대 이용자의 이메일을 통해 여행 일정과 항공편 등을 인식하고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해 출발 시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구글은 최근 이를 발전시킨 ‘구글 나우 온 탭’을 선보였다. 이용자의 앱 이용 행태를 파악해 다음 단계에서 이용자가 필요로 할 것을 예측해 제안해주는 서비스다. 지난 13일 국내에서도 공개된 구글의 레퍼런스폰 ‘넥서스5X’와 ‘넥서스6P’에 탑재됐으며, 앱 실행 중 홈 버튼을 몇 초간 누르면 앱 화면의 내용을 분석해 관련 정보를 자동으로 찾아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Cortana)’는 2014년 윈도폰 8.1에 탑재되며 출시됐다. 이메일과 주소록, 위치, 달력, 웹 검색 등의 접근을 통해 이용자의 니즈를 예측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구글 나우나 애플 시리와 유사하다. 다만 제공된 정보 중 이용자가 저장하고 싶은 정보를 카테고리별로 나눠 담을 수 있는 ‘노트북’ 기능은 차별화된 서비스 전략이다.
코타나는 윈도10 출시 이후 스마트폰뿐 아니라 데스크톱, 태블릿PC에서도 제공되고 있다. 향후 ‘폰 컴패니언’ 앱을 통해 윈도 탑재 기기 외에 안드로이드와 iOS를 장착한 모바일 기기에도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페이스북도 지난 8월 가상 비서 서비스 ‘M’을 공개하고 실리콘밸리 내 사용자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에 돌입했다. M은 페이스북 메신저 앱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텍스트 기반의 서비스로, 정보 검색이나 직무 수행을 대신할 수 있다. M은 현재로서는 페이스북 상의 소셜 데이터를 가져오지는 않기 때문에 오로지 질문자의 답변에 기반을 둔 제안을 하고 있으나, 데이비드 마커스(David Marcus) 페이스북 메시지 사업부문 부사장은 이는 향후 이용자의 동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M은 인공지능 시스템뿐만 아니라 ‘M 트레이너’라고 불리는 직원들의 업무가 결합돼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라는 점에서 다른 서비스들과 차별화된다. 이를 통해 식당 예약, 상품 구매, 여행 계획 수립 등의 실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M 시스템의 학습 능력이 점차 강화될수록 사람의 의존도는 서서히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가상 비서 서비스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단연 개인정보 보호 문제다. 또 서비스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의 객관성도 담보해야 한다.
진홍윤 KISDI 연구원은 “애플이 정보 수집을 기기에서만 하고 웹에서는 하지 않는 정책을 따른다면 제한적인 서비스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구글에 대해선 이용자가 얼만큼의 정보를 공유하느냐에 따라 더 많은 관련 정보를 제안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결국 이용자들은 개인정보를 회사 측에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 연구원은 “가상 비서 서비스를 통해 제공받는 정보가 많아진다면 향후 사업 기회가 특정 기업으로 쏠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며 “ICT 기업들이 서비스를 개발할 때 이같은 우려에 대한 대응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미연 기자 kmytt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