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고마 해라..마이 뭇다 아이가"

"할만큼 했다" vs. "더해야 한다"
정부 '당근'에서 '채찍'으로 바꿔들자 "투자한다"

입력 : 2009-07-17 오후 3:50:55

[뉴스토마토 김세연기자]  "고마 해라...마이 뭇다 아이가"

 

민간의 투자확대를 요구하는 정부의 요즘 움직임을 보면 영화 '친구'의 대사가 생각난다. '칼'에 찔리고 있던 정부가 반격에 나선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막대한 재정지출과 수출호조로 근근히 버텼던 상반기에는 정중한 태도로 기업들에게 투자를 요청하는 정부가 최근들어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정부는 상반기에만 전체 집행예산 273조원의 절반이상인 171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지출했다. 각종 연구개발(R&D) 투자지원은 물론 다양한 세제지원을 통해 경제의 급속한 위축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경제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산업을 위해서는 지난 6월까지 개별소비세를 면제해줬고, 오는 12월말까지 한시적으로 신차구매시 취·등록세와 개소세를 최대 310만원까지 감면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도 민간부문의 투자는 늘지 않았다. 지난 1분기동안 실질기준 연간 설비투자액은 17조700억원에 그쳐 지난해 같은기간의 22조7000억원에 비해 22.1%가 감소하며 2001년이후 7년만에 최악의 수준까지 떨어졌다.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올해 전체 정부 집행예산 중 62.9%가 상반기에 집중 투입돼 이제 남은 자금은 101조원 정도가 전부다. 재정을 더 투입하고 싶어도 곳간이 비어 있다.

 

하반기들어 텅빈 곳간의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더 이상 투입할 자금이 없는데다 수출을 이끌었던 국제유가와 원자재가격마저 상승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는 다급해졌다.

 

◇ 다급한 정부 '당근'에서 '채찍'으로 바꿔들다

 

너무 돈을 많이 써서 곳간이 비었으니 이제 다른 사람이라도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려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그 동안 완곡한 표현으로 기업투자를 요청하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반기 들어 처음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정부의 노력은 다했다. 이제 기업이 이에 상응하는 움직임을 보여라"고 압박성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윤 장관은 세제지원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준 완성차업계를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투자하라"고 압박했다. 재계가 요청한 애로사항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며 애둘러 말하던 윤 장관은 온데간데 없고 "당장 투자하라"는 식의 강경 발언이 이어졌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도 최근 유럽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상반기 정부의 예산지원으로 경기를 이만큼 회복시켰고 이제는 대기업 중심의 민간부분 투자가 경제를 이끄는 추진력이 되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에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아예 "기업윤리가 없다"고 도덕성을 들먹이며 자극했다.   

 

이 같은 정부의 압박성 발언이 나오자 삼성, 현대, 한화, SK, LG 등 국내 대기업들이 일제히 하반기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주력분야인 액정표시디스플레이(LCD) 라인증설에 최대 5조원의 투자와 함께 스마트프로젝트 과제선정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분야에 5년간 5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LG그룹도 신약개발과 스마트폰, LCD분야에 11조3000억원을 올해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한화그룹은 3년간 6조5000억원, SK그룹은 1조3000억원을 하반기중 투자하기로 하는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하반기 투자계획을 쏟아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신제품 기술개발 강화와 미래대비 선행투자, 노후시설 개선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정부의 질책 이후 쏟아진 투자계획이라 정부의 압박용 카드에 못이긴 채 내놓은 '급조된 투자계획'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대기업 '울며 투자하기?'..내수에 도움 안돼

 

문제는 기업들의 잇따라 투자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들의 투자를 신뢰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투자를 위한 투자'로 이어진다면 하반기 경제회복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는 기업인들이 많다는 데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란 채산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며 "정부의 잇따른 압박 때문에 묻지마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삼성경제연구소를 비롯한 민간 연구기관들은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큰폭으로 투자를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쌍용차와 비정규직 문제 등 고용시장 불안이 산적해 있는 현실에서 규제완화와 제도개선을 통한 여건마련 없이 강제적으로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이들 기업의 실제 투자효과가 내수회복과 연결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실제 지난 16일 삼성전자와 자동차차용 반도체 개발에 나선 현대자동차는 9조원에 달하는 신규 투자계획을 발표했지만, 현대측에 정통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투자는 해외 설비투자에 활용될 것"이라고 말해 실제 투자분이 내수시장 활성화에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 같은 투자압박은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 선별할 수 있는 잣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투자를 하는 기업은 구조조정의 강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의 압박에 의해서건 민간의 잡라적 투자건 투자계획은 발표됐다. 풀려는 돈이 진정 우리 경제에 피가 되고 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스토마토 김세연 기자 ehous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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