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책팀]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한 정부의 고민은 깊다. 막대한 재정지출로 재정 건전성이 크게 악화돼 그야말로 쓸 곳은 많은데 쓸 돈이 없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서민층의 비난을 무릅쓰고 '죄악세' 도입을 추진하다 국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렸고, 10년만에 대형 TV 등의 개별소비세를 부활시키려 하지만 이조차 만만치 않다.
올해 세제개편 방안 발표는 한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밤잠을 설치면서 방안을 짜내서 언론을 통해 여론을 떠보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로 재정여건은 갈수록 악화될 것이 뻔한데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당국도 속이 탄다.
◇ 지출 줄이고 세입 늘리면 되지만..
적자재정을 벗어나는 방법은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면 된다. 의외로 간단하지만 오랜 경기침체로 세수(稅收)기반이 취약해져 세금을 더 걷기도 쉽지 않다.
지출을 줄이는 것은 더 어렵다. 올해 추경을 통해 추진하던 한시적 사업은 중단되겠지만 새 정부 들면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사업이나 4대강 살리기사업 등 대규모 사업의 예산을 줄이는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종합부동산세 인하,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적 폐지 등 부동산 관련 감세로 이미 서민층의 반발을 샀는데 죄악세 도입 등을 밀어부친다면 강력한 조세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사면초가에 빠진 조세 당국은 영국 정부의 세제개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재무부는 지난 4월 내년부터 연소득 15만 파운드(한화 약 3억1000만원) 이상인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종전 40%에서 50%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 경우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연봉 280만 파운드(약 58억원)를 받는 박지성 선수는 내년 4월부터 연봉의 절반인 29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올해 내는 세금은 23억3000만원이다.
◇ 박지성 연봉 절반 29억이 세금
우리나라에서는 '세금폭탄'이지만 여러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종합부동산가 "2% 부자를 겨냥한 세금폭탄"이란 비난을 받았지만 영국에서는 한꺼번에 소득세를 5%나 올려도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국의 세제개혁은 일부 계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부의 양극화를 막는다는 측면에서도 효과적라는 것이 이유다.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는 중산층과 서민층을 포함한 모든 계층이 부담하지만 소득세는 고소득층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2011년부터 소득세의 최고세율을 현행 33~35%에서 36~39.6%로 높인다. 4%포인트 이상 세율을 높인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2011년 6367억 달러의 세금을 더 걷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조세정책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현행 6~35%인 소득세율을 6~33%로 낮추고, 법인세율은 11~22%에서 10~20%로 내릴 방침이다.
소득세는 구간별로 12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사이의 중간 2개 구간은 올해 1%포인트 낮아진데 이어 내년에 추가로 1%포인트 더 낮아진다.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8800만원 초과구간도 올해 35%에서 내년에는 33%로 2%포인트 내리고, 세율이 가장 낮은 1200만원 이하 구간은 올해 이미 2%포인트 인하됐다.
법인세는 2억원 이하인 경우 올해 2%포인트 낮아졌고, 2억원을 초과할 경우는 내년부터 2%포인트 인하될 예정이다.
여러 선진국들의 경우에서 보듯 결국은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이 현재로선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법인세 유보 등 감세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정부의 결단을 요구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감세정책은 MB노믹스의 핵심"이라는 이미 사망한 논리를 놓지 않고 있다.
◇ 결국 증세가 답?
전문가들은 세수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세율은 내리되 세원은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가가치세의 면세 대상을 축소하고 사치품 중심으로 개별소비세 대상 품목을 더 확대하는 방법 등이 있다고 조언했다.
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세율은 인하더라도 세원을 넓혀야 한다. 과거에 과세 자체를 하지 않았던 곳에 세금을 부과하면 세수 확보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서 "지금과 같은 재정이 악화된 시점에서는 제도적으로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또 "이렇게 어려울 때는 있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면 되는 것"이라며 "최고세율보다 더 높은 구간을 만들어서 그 사람들에게 탄력성을 적용해서 세금을 더 내게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또 누락세원를 찾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소득 전문직과 대규모 현금수입 업종에 대한 수입금액을 현실화하고, 부자들의 상속·증여세 세원의 관리를 더 강화하는 등 고소득층에서 누락된 세원을 찾아내 과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부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유흥업소의 탈세나 개인간의 불법거래 등은 세원이 밝혀지지 않는데 이런 것들을 밝히려면 신용카드 사용확대 등의 정책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면서 "인위적인 증세보다는 이런 방향이 자연스럽다"고 충고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대규모 탈루에 대해서는 비용이 들어도 집중적으로 (조사)한다든지 해서 4~5년 뒤 세원으로 파악하는 정상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어쨌던 세금은 더 걷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 간부는 "우리나라의 재정시스템은 걷는 것은 적은데 쓰는 것은 많은 시스템"이라며 "결국 조세부담률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도 세금을 더 걷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어떻게 걷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정부의 고민은 깊지만 무엇을 위한 고민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고민이 길어질수록 재정적자는 더 쌓여간다.
뉴스토마토 정책팀 newstomat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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