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 ‘손해발생의 위험’ 확장해도 그 범위 제한적이어야

경영판단(위험감수)과 법적판단(위험회피) 간에 충돌 최소화가 관건
배임죄의 구성요건 보다 법 적용이 일관되지 않은 게 더 문제
안전장치는 회사 경영체제가 ‘민주적’ 요건 충족돼야

입력 : 2015-10-26 오후 6:18:53
“배임죄, 이대로 좋은가?” 세미나 토론에 참여한 다수의 전문가들은 현행 ‘배임죄’의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관련 법조항의 수정보완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했다.
 
먼저 박동영 법무법인 두우 대표변호사에 의하면, 배임죄라는 범죄의 태양은 원래 신임관계에 있는 상대방에 대한 것이었지만 기업과 관련된 배임죄가 등장하면서 행위자가 속해 있는 조직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변형이 가해졌다.
 
근래에 나타난 재벌과 관련된 배임죄의 경우는 행위자가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가 지배하고 있는 조직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점을 보이고 있어,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해 각 경우에 적합한 연구와 검토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가중처벌의 기준이 되는 액수를 상향 조정할 필요성이 있는지,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재벌의 사익편취 행위에 대하여 배임죄를 적용할 것인지, 상법의 특별배임죄에 규정된 배임죄 주체의 확장을 형법 적용에 있어 재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배임죄의 주체와 관련해 사외이사의 책임을 어느 정도로 추궁할 것인지, 이득이라는 요소가 배임죄에 있어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져야 할 것인지, 제3자가 이득을 얻게 되는 경우 행위자와 일정한 관계가 있어야 할 것은 아닌지, 손해액의 산정이 어려울 경우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계열기업에 대한 지원과 배임죄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등 배임죄와 관련하여 검토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나승철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는 기업의 경영현실과 배임죄 처벌의 필요성을 조화하기 위해서는 배임죄의 ‘고의’와 ‘손해’ 요건을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고의’와 관련해서 배임죄를 목적범으로 개정해 고의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에 찬성하며, 다음으로 ‘손해’의 요건과 관련해서는 형법 제355조 제2항 배임죄의 문언에 충실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즉 배임죄는 문언상 ‘손해를 가한 때’에 성립되는 것이지 ‘손해를 가할 위험이 있을 때’에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형사정책상 배임죄 처벌의 필요성 때문에 ‘손해발생의 위험’이 있는 경우까지 확장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그 범위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면책조항과 관련해서는 면책요건을 강화하고, 면책사유의 입증책임은 면책을 주장하는 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배임죄가 기업경영활동에 적용되어야 한다면 경영자가 ‘의도적’으로 회사에 ‘실질적 손해’를 입혀 ‘개인적 이득을 얻은 경우’가 명확한 경우에만 적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경영실패가 있더라도 정상적인 경영판단이었다면 책임을 물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는 의도적이지 않은 행위, 손해발생 위험만 초래한 행위, 경영자의 이익취득이 명확하지 않은 행위, 경영판단 행위 등도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이 처벌받지 않도록 법조문을 개정하고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경영판단은 미래의 사실을 예견하며 판단하는 ‘위험감수’ 성격이 강하지만 법적판단은 과거의 사실을 두고 판단하는 ‘위험회피’ 성격이 강하다. 경영판단과 법적판단 간에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배임죄 개선은 이러한 충돌을 최소화해 양 판단 간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법적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서도 안 되겠지만 찍히지도 않았는데 도끼만 나무라는 것도 법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영근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우리의 배임죄는 독일이나 일본의 배임죄보다 그 성립요건이 더 엄격하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배임죄의 구성요건에 있다기보다 구체적 사건에서 법원의 해석, 적용이 일관되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 중요한 원인은 우리 법원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법원구조는 마치 종합병원에서 한 의사가 모든 과목을 진료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우리 판례는 배임죄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범죄에서 기본적으로는 경제적 재산 개념을 따르면서도 어떤 사건에서는 법률적 재산개념을 따르는 모순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이사는 주주가 아닌 회사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는가 하면 회사에게 손해가 나지 않아도 주주에게 손해가 나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판결들도 있다.
 
경영자가 경영판단법칙에 따라 경영행위를 하였다면 설사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켰다고 하더라도 처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소위 오늘날 형법에서 널리 인정되는 ‘허용된 위험’의 법칙상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안전장치에서 제시되는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경영체제가 민주적이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황제적 경영체제하에서는 ‘내부기구 내에서 자유롭고, 실질적이고, 심도 있는 토의를 하였다’는 것이 인정되기 어려울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미래연구원
 
해외 부실 정유사 인수로 1조원대의 국고 손실을 초래한(업무상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지난 6월 2일 새벽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 귀가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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