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대기업은 살리고 중소기업만 대거 정리되는 '대마불사' 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대손충당금 부담으로 수익성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은행들도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지배적이다.
살만한 기업들을 살리자는 '좀비 기업' 구조조정이 대기업을 위한 허울좋은 명분이 되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추진중인 좀비기업 구조조정으로 재무상황이 어려운 중소기업만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안에 그럴듯한 구조조정 성과를 내야하는 상황이다. 내년이 되면 총선 국면으로 구조조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데다 기업 부실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최근 강도 높게 은행을 압박해 기업 구조조정을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서두를 경우 이른바 '좀비 기업'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대기업보다 대출 규모나 사회적 파장이 작은 중소기업을 집중해서 정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불거지고 있다.
양원근 금융연구원 비상임연구위원은 "대기업은 하나만 부실화돼도 워낙 부채규모가 크니까 은행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며 "은행이 대기업의 경우에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시중은행장 초청 조찬 간담회에서 10개 은행장들에게 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소기업은 가차 없이 솎아내고 대기업은 살린다는 '대마불사' 우려 또한 커졌다.
중소기업 여러 개를 좀비기업으로 낙인찍는 것이 대기업 한 개를 부실기업으로 처리하는 것 보다 훨씬 손쉽고 그럴 듯한 모양새가 갖춰진다는 점에서다.
현재 각 은행들은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 지난해보다 325개 더 많은 총 1934개 중소기업을 상대로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진행중이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작년보다 부실징후기업 수가 더 늘어나 대손충당금 부담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평가는 10월 말까지 진행되고 결과는 11월 중에 공개된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신용위험평가는 다음 달부터 12월까지 진행된다. 지난 7월에 이어 2번째로 이뤄지는 평가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당국과 은행의 대기업 구조조정 의지를 의심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대기업 신용평가 결과가 1월 즈음에나 나올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연내 구조조정을 매듭짓겠다던 금융당국의 의지를 무색케 하는 대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11월과 12월에 은행별로 검사 들어가니 1월 중에는 금감원이 좀비기업 평가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년 중에 업무를 완료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정확한 발표 시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유암코가 지난 7월 신용위험평가에서 C, D등급을 받은 대기업 35곳 중 일부를 인수할 것으로 알려져 대마불사론은 더욱 부각되는 모양새다. 유암코는 부실기업의 채권이나 주식을 사들인 뒤 가능하면 기업을 살리는 역할을 맡는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을 살리는 데 4조2000억원의 신규자금을 투입하는 안을 확정한 것도 비슷한 의혹을 자아낸다.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대기업 사이에) 우리를 어떻게 죽여. '대마불사' 이런 게 사실은 아직도 팽배하다"며 "1만명짜리 대기업 구조조정하는거나 100명 중소기업 100개 정리하는 건 똑같지만, 중소기업 쪽이 더 쉽다"며 "대기업은 1만명이 한꺼번에 와서 집회를 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러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중소기업에) 유탄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며 "이런 차원의 가능성이 존재함을 염두에 두고 한계기업 정리는 엄격하고 투명하게 진행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